늦가을 스산한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마음은 벌써 길 떠날 채비를 한다. 매년 추수감사절 연휴가 되면 겨울나라로 가는 것이다. 맘모스 산 통나무집에서 열리는 3박4일의 대가족 생활에 합류해온 지 여러 해다. 이정아 수필문학회 회장이 지인들과 함께 20여 년 동안 계속해온 연례행사이다.
모하비 사막을 거쳐 하얀 소금이 양쪽 가장자리에 어려 있는 강줄기를 동편으로 두고 서편의 시에라네바다 산맥의 줄기를 따라 가도 가도 끝없이 펼쳐지는 황량한 고원을 끝없이 올라간다. 사진으로만 본 티벳의 고원이 분명 이럴 거라는 상상을 하면서 좌우를 두리번거리며 간다. 자동차는 어쩌다 한번 스칠 정도로 드문 탓인지 매연이 거의 없어 하늘은 더없이 푸르다. 고도가 높은 데도 길은 평지처럼 보이는 그곳에서 구름은 거의 땅에 닿아있는 듯, 손에 잡힐 듯하다.
한 지붕아래 사는 가족이지만 차 속 좁은 공간에서 몸 부비며 간식 먹으며 음악 들으며 오랜 시간 함께 하는 경험은 각별하다. 너무 정겹다. 맘모스 가는 중간에 꼭 쉬게 되는 비숍의 맥도널드에서 커피를 마시면서 창밖을 하염없이 바라보는 경험도 특별하다.
플라타너스를 비롯한 빨갛고 노랗게 물든 단풍나무와 멀리서 하얀 눈을 머리에 이고 있는 시에라네바다 산맥의 아름다운 경치를 바라볼 때는 시야가 툭 트이면서 눈이 절로 맑아지는 느낌이다. 비숍에서 마지막 언덕을 한시간쯤 올라가면 드디어 온통 눈에 뒤덮인 맘모스 레이크와 거대한 스키 빌리지에 도착한다. 길은 어느새 소나무 숲속으로 변하고 울창한 숲길을 돌아 돌아 매년 찾아가는 집, 막다른 골목의 오두막 촌 샬레 19번 앞에 차를 세운다.
추수감사절에 친정집을 찾아가는 발걸음처럼 마음은 다사롭고 한없이 고조된다. 매년 같은 친정집이다. 우리가족은 통나무집의 반 지하에 위치한 방 두 개에 짐을 푼다. 이 선생님 가족은 이층 침실을, 다른 가족은 일층 방 두개에 머문다.
세 여자 모두 손이 크고 간식도 다양해서 3박4일 먹을 것이 열흘 치 이상 되는 것 같다. 열 명이 넘는 세가족의 구성원 모두가 성격이 원만해서 함께 지내기에 그지없이 편안하다는 것이 가장 좋은 점이다. 아마도 연장자인 이 선생님이 위트와 유머가 넘치는 말솜씨로 우리를 편하게 하기 때문이리라.
맘모스 산에서 보내는 시간은 아늑하다. 매일 하루 세끼, 사흘을 한 식탁에서 함께 먹는 것도 좋고, 기세 좋게 활활 타오르는 벽난로 옆에서 TV도 보고 웹서핑도 하고 바둑도 두며 여럿이 함께 지내는 경험 모두가 정겹다. 쿠키도 굽고 고구마도 굽고 작설차와 와인도 마시면서 창밖의 눈발 휘몰아치는 풍경을 바라본다.
신 새벽에 눈 쌓인 하얀 산 아래 오두막에서 살며시 커튼을 젖히면 유리창 너머로 천천히 어둠이 걷히고 서서히 아침이 다가온다. 스키부츠를 신고 길 건너 바로 앞에 위치한 리프트를 탈 수 있어 편리하기도 하다. 스키 화를 신고 뒤뚱뒤뚱 걸으며 행여나 넘어질까 조심하며 내려다 본 눈길에는 얼음화석이 된 곰발자국, 신발자국이 찍혀있다. 일 피트 두께의 이불솜 같은 눈밭 위에도 손바닥만한 곰발자국이 드문드문 보인다.
우리의 ‘친정집’은 맘모스 스키장 ‘디스커버리 체어’ 리프트에서 가장 가까운 오두막집이다. 광에는 겨울 한철을 지낼 수 있는 소나무 장작이 그득하고 주변을 둘러보면 식수가 될 수 있는 눈이 허리 높이 이상 그득히 쌓여 있어 혹시 재난이 닥쳐도 끄떡없을 것 같다. 곳간이 그득한 친정집 오두막을 떠날 때는 발 길이 떨어지지 않는다. 일년에 한 번 친정집에서의 휴가는 삶의 큰 활력소가 된다.
아쉽게도 올해는 이 선생님이 참석하지 못하셨다. 큰 엄마 없는 가정처럼 그렇게 허전할 수가 없었다. 내년에는 다시 건강해진 이 선생님과 맘모스에서 함께 북적이며 대가족의 즐거움을 누리고 싶다. 항상 제일 먼저 도착해서 늑장부리며 마지막에 도착하는 우리를 반갑게 맞이해 주는 큰엄마는 친정집에 꼭 필요하니까.
윤선옥 / 동아서적 대표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