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와 로즈메리 로린스는 과거를 되찾아가고 있다. 휴는 2002년 자전거를 타다가 차에 치여 뇌수술을 받았다.
지난달 8일, 가브리엘 기퍼즈 연방 하원의원이 남편 마크 켈리와 함께 애리조나주 투산의 한 교회 행사에 모습을 드러냈다. 2011년 1월 8일, 머리에 총상을 입고 뇌수술을 받은 지 꼭 1년만의 일이었다. 그날 기퍼즈는 더듬대는 목소리로‘국기에 대한 맹세’를 암송, 청중의 환호를 받았다.
이어 간증에 나선 미항공우주국(NASA) 소속 우주비행사 켈리는 아내의 뇌수술 이후 겪어야 했던“과거와의 작별”에 관해 이야기하며 울먹였다. 뇌손상을 입은 환자의 배우자라면 켈리가 언급한“과거를 놓아주어야 하는 현실의 고통”이 무엇인지 너무도 잘 안다. 뇌에 심한 손상을 입은 환자들은 기적적으로 목숨을 건진다 해도 대부분 과거의‘나’로 온전히 돌아가지 못한다. 성격변화가 일어나고, 이로 인해 배우자와의 관계가 심각한 도전을 받게 된다.
전문가들과 의사들은 “뇌 부상이 가져오는 성격변화로 부부사이의 관계가 회복불능의 타격을 입을 수 있으며 결과적으로 결혼 생활이 파국을 맞게 되는 경우가 다반사”라고 경고한다.
켈리는 이 문제에 관한 자신의 뼈아픈 경험담을 들려주지 않았다. 지난달 22일 의원직을 사퇴한 기퍼즈도 마찬가지였다.
뇌 부상이 부부관계에 치명적이라는 광범위한 사회적 인식에도 불구하고 머리를 다친 배우자를 둔 커플의 이혼율은 전국 평균치를 밑돈다. 2007년의 한 조사에 따르면 배우자가 뇌손상을 입은 커플의 이혼율은 17%에 불과, 전국 평균치에 미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뇌 부상 이후 90개월 사이에 기록된 수치이다.
하지만 낮은 이혼율이 반드시 원만한 부부관계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버지니아 커먼웰스 대학 심리학자인 제프리 크로이처의 말대로 처음에는 환자건, 배우자건 목숨을 구할 수만 있다면 더 이상 바랄 게 없다고들 말하지만 회복 후 2~3년이 지나면 단순한 생존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원하게 된다. 그 중 하나가 망가진 결혼 생활의 원상회복이다.
크로이처는 뇌 부상 환자의 배우자에게 ‘이전과 완전히 달라진 사람’과 새로운 관계를 형성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는 한편 환자 본인에게는 자신이 변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라고 조언한다.
새로운 관계형성에 필요한 ‘도구’는 뇌 손상 이전과 대부분 동일하다. 무엇보다 ‘소통’을 개선하는 것이 중요하다. 긍정적인 발전상황과 새롭게 드러난 상대의 좋은 면에 초점을 맞추는 접근법을 취해야 한다. 부부간의 로맨스와 즐거움을 위한 시간을 할애하는 것 역시 ‘정상’ 커플의 관계 쌓기와 다를 바 없다.
하지만 버지니아 커먼웰스 대학의 또 다른 심리학자인 에밀리 가드윈은 “과거의 뜨거운 불길을 되찾기 위한 방법으로 이들 부부에게 사랑에 빠질 당시의 기억을 떠올려 보라고 주문하는 것은 역효과를 낼 위험이 높으니 피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미 잃어버린 것을 되풀이 확인토록 하는 역주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뒤를 돌아보는 후향적 태도를 버리고 앞을 바라보는 전향적 자세로 새로운 관계를 구축해 가야 한다.
지난 2006년 뇌종양 수술을 받은 테리 커티스는 퇴원 후 한 달 만에 아내 비키에게 “지금의 나는 당신이 사랑하고 결혼한 사람과는 완전히 다르니 부담 갖지 말고 떠나라”며 이혼을 제안했다.
누가 보아도 그는 변했다. 이전과 달리 차갑고 충동적인 성격에 무엇에건 정신을 집중하지 못했다. 의사들은 수술 후 18개월이 지난 뒤에야 그가 수술 후유증으로 뇌손상을 입었다는 사실을 확인해 주었다.
비키(60)는 늘 활기가 넘치던 남편 테리(57)가 수술 이후 감정적 고사상태로 빠져들었다고 말했다. 우울증과 불안감에 시달렸고 매사에 의욕을 잃었다. 엉뚱한 일을 벌여 집안을 아수라장으로 만들기 일쑤였고, 그럴 때마다 부부 사이에 한바탕 말다툼이 벌어졌다.
수술 전 소프트웨어 프로그래밍 애널리스트였던 테리는 “친구들의 90% 이상이 내 곁에서 멀어져갔다”고 말했다. 그의 친구들은 “새로운 테리”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난감해 했다.
뇌 손상의 정신적 증상은 밖으로 드러나 보이는 외상보다 오래간다. 때문에 타인들은 물론 친구들조차 이들이 보이는 사회적으로 부적절한 행동의 뿌리가 어디서 비롯된 것인지 이해하지 못할 때가 많다.
이들의 사정을 잘 아는 가족들도 환자의 비위를 맞추는데 어려움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결국 ‘왕따’가 뒤따르게 되고 환자는 소외감이 늪 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비키는 남편의 병구완이 “너무도 외로운 일이었다”며 “테리가 잠든 사이에 나의 인생은 우두커니 거실에 앉아 있었다”고 말했다.
크로이처는 뇌 부상을 당한 사람의 몸에 들어선 ‘타인’과 배우자를 묶어주는 유일한 끈으로 ‘죄의식’을 꼽는다. 그러나 이혼을 생각하는 환자의 배우자만이 죄의식을 느끼는 것은 아니다.
이제까지의 연구에 따르면 환자들의 절반 정도는 심각한 우울증에 시달린다. 밥벌이를 할 수 있는 재정적 능력이 없는데다 감정적 기복까지 심하니 배우자에 대한 죄책감이 서리서리 쌓일 수밖에 없다.
비키는 그러나 죄의식이나 남편을 돌봐야 한다는 책임감에 그의 곁을 지킨 것이 아니라고 말했다. 무엇보다 카운슬링이 큰 도움이 됐다. 남편의 정신적 회복에 대한 기대와 자신의 반응을 관리하는 법을 배운 것이 이혼을 막아준 토대였다.
뇌손상의 후유증을 딛고 과거를 회복한 사례가 아주 없지는 않다. 휴 로린스와 로즈메리가 이 케이스에 속한다.
로린스는 2002년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차에 치여 머리에 큰 부상을 당했다. 심한 뇌부종으로 두개골을 절반이상 제거해야했다.
담당의사는 로린스가 언어기능을 회복할 경우 14세 된 두 쌍둥이 딸에게 폭언을 일삼거나 성질을 부려댈 것이라고 말했다.
성격변화로 대인관계 빵점의 염세주의자로 변하리라는 예상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진단은 빗나갔다. 결코 쉽지 않았고 시간도 오래 걸렸으나 로린스는 과거의 자신을 되찾았다. 대신 그가 회복을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내딛을 때마다 로즈메리는 남편이 벗어던진 짐을 하나씩 짊어져야 했다.
다시 운전을 배우려는 남편을 저지하려 열쇠를 감추었다가 부부싸움을 벌였고 자전거를 타겠다는 통고에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했다.
사고는 남편이 당했지만 외상후 스트레스장애증후군(PTSD) 진단을 받은 것은 로즈메리였다.
그녀는 남편의 뇌 부상으로 ‘중년의 권태기’가 날아갔다며 웃었다. 머리를 다친 로린스는 이전과 달리 감정이 풍부해졌고‘스킨십’ 횟수도 잦아졌다.
로즈메리는 남편이 점차 과거의 자신을 되찾고 있으나 “나는 더 이상 과거의 그를 기억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뉴욕타임스 특약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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