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간은 여성만을 대상으로 한 범죄라는 사회적 통념이 좀처럼 사라지지 않고 있다.
케이스스미스(52)는 강간 피해자다. 열네 살 철부지 시절, 하키팀 모임을 끝내고 집으로 가던 길에 겁 없이 남의 차를 얻어 탔다가 호된 대가를 치렀다. 하지만 누구를 탓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지나가던 차를 세워 스스로 화를 자초했다는 생각에 속절없이 제 가슴을 쥐어뜯어야 했다.
당시그의 집은 로드아일랜드주 프로비던스의 외곽인 하틀리스 포크 파이스에 위치하고 있었다. “여기서 내려 달라”는 그의 요청을 무시한 채 운전자가 집 근처의 소방서를 그대로 지나치자 케이스는 “무언가 잘못됐다”는 생각에 덜컥 겁이 났다. 급한 마음에 문을 열고 뛰어내리려 했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내부 잠금장치 때문에 차 문을 열 수 없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케이스는 자신이 성폭행을 당할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성폭행은 여성만이 당하는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케이스가 욕을 본 후 40년이라는 긴 세월이 흘렀고, 그 사이에 천주교 사제들의 아동 성추행 스캔들과 같은 대형사건이 터졌지만 아직도 강간은 여성을 겨냥한 범죄라는 인식이 광범위하게 자리 잡고 있다.
불과 몇 주 전 연방 정부가 강간의 정의를 확대하기 전까지 전국 범죄통계는 좁게 규정된 상황에서 여성을 대상으로 남성이 자행하는 성폭행만을 강간의 범주에 포함시켰다.
전문가들은 강간 피해자의 절대다수가 여성이라는 사실에 동의한다. 최근 연방 질병예방통제센터(CDC)가 남성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전국 규모의 서베이에서 응답자의 1.4%만이 “강간을 당한 적이 있다”고 밝혔다.
이 조사에서는 성폭행을 여러 유형으로 분류해 제시했는데 ‘구강, 혹은 항문 내 성기 삽입’으로 규정한 강간에 대해서는 71명당 한 명 꼴로 “당했다”거나 “당할 뻔 했다”고 털어놓았다.
자신의 뜻과 달리 친지나 파트너에 ‘삽입’을 강요당했거나 억지로 오럴섹스를 받았다는 대답은 21명당 한 명꼴로 나왔다. 이 경우 상대는 대부분 여성이었다.
CDC 서베이는 재소자들을 표본 집단에 포함시키지 않았다.
연방 법무부가 추산한 남성 강간 피해자의 비율은 3%로 CDC 서베이 결과에 비해 훨씬 높다. 일부 전문가들은 남성 6명 중 한명이 미성년자였을 당시 원치 않는 성적 접촉을 경험한 것으로 믿고 있다.
하지만 남성 피해자들은 자신이 당한 일을 입에 올리기를 극히 꺼려한다. 남성에게 강간피해란 있을 수 없다는 사회적 통념이 워낙 완강하다 보니 성폭행을 당한 남성은 성적 정체성마저 의심받게 된다. 이런 분위기에서 피해 사실을 밝히는 것은 그 자체로 금기에 해당한다.
임상심리사인 데이빗 리애스크는 “어린 남자 아이들이 성추행이나 성폭행을 당한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아이들이 자라서 성년의 문턱을 넘게 되면, 다시 말해 우리가 생각하는 ‘남자’가 되면, 그들 역시 강간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게 된다”고 지적했다.
물론 정확한 통계치는 나오지 않았지만 남성을 대상으로 한 강간사건이 가장 자주 발생하는 곳으로는 교도소가 첫 손가락에 꼽힌다.
남성 강간은 집단적 전쟁범죄의 형태로 터지거나 ‘성고문’처럼 취조과정에서 일어나기도 한다. 동성애자들을 겨냥한 혐오범죄, 대학의 프래터니티와 같은 남성전용 클럽의 입회의식, 군대에서의 이지메 도구로 강간이 ‘사용’되는 경우도 있다.
낯선 타인보다는 술이나 마약에 취한 친지나 파트너에게 성폭행을 당하는 사례가 더 많다.
흔히 PDSD로 알려진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로 장애연금을 신청한 3,373명의 참전 군인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온라인 조사에서 남성 전투병의 6.5%, 비전투원의 16.5%가 전역을 전후해 성폭력을 당했다고 밝혔다. (여군의 경우 전투병의 69%, 비전투원의 86.6%가 같은 대답을 했다.)
일부 연구결과에 따르면 남성들의 강간위험은 젊은 층에 속한 빈민자와 홈리스, 장애자와 정신질환자들 사이에서 특히 높다.
이외에 CDC는 자체 조사를 통해 남성 피해자의 25%가 10세 이전에 아는 사람에게 강간을 당했다고 밝혔고 저소득층 메디케이드 환자를 보살피는 내과전문의 제인 게이츠는 편모슬하에서 자란 젊은 남성이 강간의 주된 표적이라고 말했다.
여성 피해자들과 마찬가지로 강간을 당한 남성들은 수치심에 사로잡히며 심각한 우울증 증상을 보이거나 자살충동에 시달린다. 마약에 빠질 위험이 높아질 뿐 아니라 대인관계에 어려움을 느끼게 되며 만성통증을 비롯한 건강문제를 일으키기도 한다.
남성으로서의 정체성과 자존심도 타격을 입게 된다. 격렬한 저항으로 강간범을 물리치지 못했다는 자괴감과 강간은 여성만이 당하는 범죄라는 사회적 통념 탓에 소외감을 느끼게 되고 피해 사실을 털어놓기를 꺼린다.
남자 피해자들은 자신의 성적 경향에 혼란을 일으키기 쉽다. 물론 강간은 여성에게만 발생하는 범죄라는 뿌리 깊은 인식 탓이다.
반면 성폭행을 당한 동성애 남성들은 자신의 성적 경향이 범행을 유발했다는 자책감을 갖기도 한다.
남성 피해자들은 달리 도움을 구할 곳도 없다. 강간피해자 지원센터는 거의 여성 전용이다. 그곳에는 남성 피해자들에게 상담 서비스를 제공할 훈련된 인력이 없다.
성폭행을 당한 후 전문적인 도움을 구하거나 성병감염 확인절차를 밟는 남성 피해자도 극히 드물다.
케이스 스미스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아버지와 형에게 자신이 겪은 일을 털어놓았고 삼부자가 함께 경찰서를 찾아가 신고를 했다.
케이스는 자신이 외워둔 차번호와 범인의 인상착의를 경찰에 일러주었다. 범인은 미성년자를 다룬 포르노그래피로 경찰이 주시하던 인물이었다.
가해자는 곧바로 체포됐다. 그러나 법정에 서지는 않았다.
재판일이 결정되기도 전에 그는 프로비던스 거리에서 사고사로 숨졌다.
스미스는 현재 강간 피해자들에게 온라인 카운슬링을 제공하는 Rainn의 상담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Rainn은 강간(rape), 학대(abuse), 근친상간(incest), 전국 네트웍(National Network)의 머리글자를 딴 것이다.
지난 40년간 그는 가해자의 차에서 뛰어내려 도망치는 악몽을 되풀이해서 꾸었다. 세 시간 만에 케이스를 풀어준 범인은 그의 손에 10달러짜리 지폐를 쥐어주었다. 그 때문에 10달러짜리 지폐를 보면 지금도 온 몸에 소름이 돋는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후유증은 완전히 가시지 않았다. 케이스는 자신의 비명소리에 놀라 깨어나곤 한다.
<뉴욕타임스 특약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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