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탈고’ 위해 철수일 하루 늦췄다가 참변
"현장으로 가라. 그림 그리듯 대충 쓰지 말고 기사에 최대한 생명을 불어넣어라"
시리아 홈스에서 취재하다 지난 22일(현지시간) 정부군의 공격으로 사망한 영국 선데이 타임스의 마리 콜빈(56.여.미국) 기자는 실감나는 글쓰기를 무엇보다 중시한 타고난 기자정신의 소유자였다.
뉴욕주(州) 이스트 노르위치에 사는 콜빈 기자의 모친 로즈마리 콜빈 씨는 23일 뉴욕타임스(NYT)와의 인터뷰에서 딸에게 전쟁터에 대한 취재를 그만하라고 말하는 것은 `소귀에 경읽기’나 마찬가지였다고 회고했다.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 신념과 열정이 너무나 강한 딸에게 분쟁지역 취재는 그 자체가 삶의 전부였다는 것이다.
모친은 콜빈 기자가 사망한 날이 마침 딸이 시리아에서 철수하기로 예정된 날이었다고 전해 안타까움을 더했다.
현장 상황이 너무 위험해지고 있다며 회사측이 전날 철수하라고 지시했지만, 당시 쓰고 있던 기사를 마무리하고 나서 나가겠다며 하루를 늦췄다는 것이다.
미국 예일대를 졸업하고 선데이 타임스에 25년 전 입사한 콜빈은 20년 넘게 특파원으로서 세계 각지의 가장 위험한 분쟁 지역을 취재한 베테랑 기자였다.
1990년대 코소보와 체첸, 동티모르를 비롯해 지난해 ‘아랍의 봄’ 열풍이 불었던 리비아도 직접 다녀왔다. 리비아에서는 무아마르 카다피 전 국가원수와 단독 인터뷰도 했다.
2001년 스리랑카 내전을 취재하다 수류탄 파편에 맞아 왼쪽 눈을 잃고 난 뒤 검은색 안대를 하고 다녔다.
이 사고로 잃었던 청력은 나중에 회복했지만 머리 속에 박힌 파편은 끝내 제거하지 못했다. 이처럼 큰 사고를 겪은 이후에도 그는 "방탄조끼를 벗지 않겠다"며 계속해서 세계의 위험한 지역을 찾아다녔다.
예일대의 입학 허가서를 받은 과정에서는 분쟁지역을 떠나지 못했던 콜만 기자 특유의 기질이 그대로 드러난다.
모친에 따르면 콜빈은 고등학교 3학년때 교환학생 자격으로 1년간 브라질에 머물면서 포르투갈어를 마스터했다.
1년 뒤에 돌아와보니 친구들은 모두 서너 대학의 입학 허가서를 받아놓은 상태였다.
이에 콜빈은 다짜고짜 예일대로 찾아가서 자신을 받아달라고 요구했다. 대학측은 `내셔널 메리트 장학재단’의 최우수 장학생이기도 했던 콜빈의 근성을 높이 평가해 결국 입학을 허가했다.
모친은 사건 당일 새벽 5시에 전화벨 소리를 듣고는 직감적으로 딸에게 변고가 생겼음을 느꼈다고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그렇게 이른 시간에 전화가 올리 없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모친은 "우리 딸을 아는 사람이라면 험지에 가지 말라고 설득하는 것이 시간낭비라는 것을 알 것이다"라며 "딸은 자신의 일에 대한 열정이 대단했고 그것이 딸이 살아가는 방식이었다"고 말했다.
(뉴욕=연합뉴스) 정규득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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