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YT "정치적 소심함으로 리더십 상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지난해 4월 조지워싱턴대학에서 연설을 하기 직전 윌리엄 데일리 당시 비서실장은 방청석에 앉아 있던 폴 라이언 공화당 하원 예산위원장을 발견했다.
데일리 실장은 오바마에게 이 사실을 알리려 했지만 때를 놓쳤다.
라이언 위원장의 존재를 모른 채 연단에 오른 오바마는 자신의 재정적자 감축안을 소개하기 앞서 라이언 위원장의 방안이 학생과 노약자의 복지정책에 큰 타격이 될 것이라고 맹공을 퍼부었다.
그러면서 "내가 대통령으로 있는 한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 순간 앞줄에서 오바마의 연설을 듣고 있던 라이언 위원장의 표정은 심하게 일그러졌다.
오바마 진영에서는 아직도 미국인의 뇌리에는 당시 오바마가 소개한 감축안의 내용보다는 라이언 위원장에 대한 공격적 발언이 더 선명한 기억으로 남아있다는 안타까움이 흘러나온다.
앞서 오바마는 앨런 심슨 전 공화당 상원의원과 어스킨 보울스 전 백악관 비서실장을 공동위원장으로 하는 재정적자대책위가 2010년 12월에 내놓은 권고안을 뚜렷한 이유 없이 거부했다.
이 대책위는 대담하고 초당적인 해법을 제시해 달라는 오바마 본인의 제안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공화당과 학계, 심지어 민주당 일각에서는 아직도 오바마가 정치적 소심함 때문에 스스로 만든 재정적자위의 권고를 묵살했다는 비판이 지금도 그치지 않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이 재정적자위의 권고안을 채택하기 시작한 것은 조지워싱턴대학 연설 직후부터다.
국방과 사회복지 등에서의 10년간 4조달러 지출 감축과 세수 확대를 위한 대대적인 세제개편, 저축증대 관련 정책 등은 재정적자위가 요구한 만큼은 아니지만 모두 권고안에 들어있던 내용이다.
이처럼 오바마는 4개월이 지난 시점에 재정적자위의 제안을 뒤늦게 받아들이면서도 이런 정책이 대부분 재정적자위의 권고안과 같은 방향이라는 부분은 끝내 인정하지 않았다.
그 이면에는 진보진영이 재정적자위의 권고안에 대해 적대적이고, 공화당은 자신이 지지하는 정책에 무조건 반대할 것이라는 생각이 자리잡고 있었다는게 참모진의 설명이다.
재정적자 정국에서 오바마의 정치력은 한계를 드러냈다. 집권 초기의 목표에서 거듭 후퇴했고 설득력은 크게 훼손됐다.
이같은 리더십의 추락은 오바마가 2010년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이 하원을 장악하게 되자 전면전 대신 참호전을 벌이기로 `전술적 후퇴’를 결심한 것과 무관하지 않다고 뉴욕타임스(NYT)가 27일(현지시간) 분석했다.
자신이 선제적으로 나가기 보다는 공화당이 먼저 적자감축안을 내놨다가 국민으로부터 엄청난 비판을 받게 되면 결국 타협안을 들고 나올 것이니 그때까지 앉아서 기다리는 방식을 택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해 여름 오바마와 존 베이너 공화당 하원 원내대표는 10년간 3조달러를 줄이는 `그랜드 바겐’에 합의했다. 하지만 부자 증세 문제를 둘러싼 이견으로 결국 무산됐고 지금도 타협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연말 선거를 앞둔 요즈음 오바마와 공화당은 대화보다는 대립에 치중하는 모양새다. 시한에 쫓겨 타협이 이뤄질 수 밖에 없는 12월의 레임덕 회기에 어느 쪽이 우위를 차지할 수 있을 것이냐는 생각에만 매몰돼 있는 것이다.
물론 이같은 교착상태에서도 오바마는 소기의 성과를 거뒀다.
여론조사에 따르면 부자 증세가 적자 해결책의 일부가 돼야 한다는데 대해 압도적 다수가 지지를 보낸다. 필수 복지정책을 지키면서도 적자를 줄이는데 누가 적임자냐에 대해서도 오바마가 공화당을 약간 앞선다.
하지만 오바마가 잃은 것도 적지 않다. 그는 재정적자위의 방안에 반대하면서도 왜 반대하는지에 대한 설명이 전혀 없었고 대안도 제시하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미국이 직면한 가장 심각한 현안에서 리더십을 상실했다.
무엇보다 2008년 대선에서 내세웠던 자신의 가장 중요한 공약인 국론통합을 이루지 못했다..
타임스는 이번달 CBS방송과 공동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미국인의 59%가 오바마 대통령이 재정적자 정국에서 보여준 리더십에 불신을 표시했다고 지적했다.
(뉴욕=연합뉴스) 정규득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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