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고령자들은 자신의 잔여수명이 어느 정도인지 알고 싶어 한다는 조사결과가 나왔다.
나이 든 사람이 가진 가장 큰 궁금증 가운데 하나가 잔여수명이다. 죽음의 그림자 속에서 불안스레 서성이는 환자들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삶의 자락이 어디서 끝날지, 도대체 ‘내’가 얼마나 더 살 수 있을지 알고 싶어 한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남은 시간’은 확인하기 두려운 궁금증이기도 하다.
UC 샌프란시스코의 노인병학 부교수 알렉산더 스미스는 “의사에게 대놓고 묻지는 않아도 고령자들의 대다수는 자신의 잔여수명을 궁금해 한다”고 말했다.
스미스 교수는 이를 입증해 주는 ‘증거’도 갖고 있다. 그가 동료 연구원들과 5주 전에 개설한 잔여수명 예측 사이트 이프로그노시스(ePrognosis)에 무려 50만명의 방문객이 다녀갔다.
이프로그노시스 사이트(eprognosis.org)에는 고령자의 잔여수명을 산출하는데 필요한 16개 문항이 떠있다. 각 질문에 대한 대답을 지수화하면 6개월에서 5년 사이의 테두리 안에서 해당자의 생존 확률을 어림짐작 할 수 있다.
온라인 잔여수명 계산기는 이프로그노시스 외에도 여러 개가 있다. 이들의 원래 목적은 고령자들의 궁금증 해소를 돕기 위한 것이 아니다. 의료인들과 건강 전문가들이 참고삼아 활용하도록 고안된 것인데, 정작 사이트를 찾는 방문객들은 자신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나 되는지 알고 싶은 노인이 대부분이다.
반면 스미스 교수의 이프로그노시스는 아예 처음부터 노인들을 염두에 두고 제작된 사이트다.
스미스 교수는 잔여수명 계산기를 누구나 용이하게 접근할 수 있는 웹사이트에 띄워놓은 것은 ‘죽음’과 ‘임종계획’에 관한 전국 차원의 논의를 활성화하는 데 조금이나마 기여하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는 의사와 환자가 ‘남은 시간’에 대해 터놓고 얘기해야 효율적이고 적절한 치료방향을 잡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환자가 ‘거짓 희망’에 매달려 불필요한 치료로 고통을 연장하도록 ‘방조’할 게 아니라 불가피한 죽음을 가급적 평온하게 맞이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의사가 택해야 할 최상의 접근법이며 이를 위해선 잔여수명에 대한 환자와의 솔직한 대화가 선행돼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하지만 죽음을 앞둔 불치병 환자뿐 아니라 주어진 시간을 소진한 고령자들에게도 “시간이 다 됐다”는 확인은 충격을 가져올 수 있다.
잔여수명을 진료기준으로 활용하는데 대한 거부감도 만만치 않다.
샌디에고 소재 ‘스크립스 머시 하스피틀’의 내과전문의 린제이 유어맨은 “담당의사가 고령자에게 예상되는 잔여수명을 일러준 후 검사와 수술, 투약을 줄이는 경우가 종종 있다”며 “이는 환자의 예상 수명을 감안할 때 치료로 인한 단기적 위험이 잠재적 혜택보다 크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라고 밝혔다.
반대로 나이에 비해 건강상태가 지극히 양호해 장수가 예상되는 고령자는 동년배에게 거의 제공되지 않는 검사와 치료를 받기도 한다.
UCLA 메디칼 스쿨의 노인학 과장 데이빗 루벤의 환자인 86세 노파는 말 그대로 정정하기 그지없는 ‘백발청춘’이다. 루벤은 현재의 건강상태로 미뤄보아 이 여성이 최소한 100세를 넘기며 장수할 것으로 확신했다.
그는 노파에게 유방암검사를 받도록 지시했다. 일반적으로 그 정도의 나이가 되면 유방암으로 숨지기 이전에 다른 원인으로 사망할 확률이 몇 배나 더 높다.
하지만 잔여 기대수명이 15년 이상인 80대 중반 고령자에게 일반론을 적용할 수 없다는 것이 루벤의 판단이었다.
한편 펜실베니아 의과대학 부교수로 임종계획을 다룬 책을 써낸 데이빗 카사레트는 “믿기 힘들겠지만 나이로 보아 더 이상 특정검사를 받을 필요가 없다는 의사의 말에 고령자들이 낙담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말했다.
그는 건강검진을 받으러 찾아온 많은 고령자들에게 “이미 대장 내시경검사가 도움이 될 만한 나이를 넘겼다”고 말해 주었지만 적어도 지금까지는 실망스런 반응을 보인 환자가 단 한명도 없었다고 전했다. 오히려 “성가신 내시경 검사를 받지 않아도 된다니 좋다”는 긍정적 반응이 대세를 이루었다.
이프로그노시스 사이트에 관여하지 않은 루벤과 카사레트는 환자가 기꺼이 응할 경우 이들의 잔여수명에 대해 터놓고 이야기를 나눈다.
카사레트는 이프로그노시스 사이트가 진료실에서 의사와 환자 사이에 이 같은 대화가 오가도록 유도하는 훌륭한 촉매제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온라인 ‘잔여수명 계산기’의 기능이 너무 제한적이라는 불만을 제기했다. 현재의 나이에서 앞으로의 잔여수명을 짚어볼 수 있도록 고안된 것이 아니라 일정한 조건과 비교적 짧은 시간의 테두리 안에서 ‘생존확률’을 추산하게끔 되어 있는 것이 아무래도 미흡하다는 지적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는 몇 가지 버전을 직접 만들어냈다.
그가 2010년에 개발한 온라인 잔여수명 계산기는 70~85세 노인들이 현재의 연령과 기동성 및 신체기능 수준을 바탕으로 자신에게 남은 시간이 구체적으로 어느 정도인지 알아낼 수 있도록 꾸며졌다.
예를 들어 신체기능이 왕성한 80세 남성이 기대할 수 있는 잔여수명은 7.2년이라는 식이다.
그러나 임종을 앞둔 말기환자의 고통완화에 초점을 맞추는 뉴욕 팰리에이티브케어 센터의 원장 다이앤 메이어는 ‘잔여수명 계산기’의 정기적 사용이 “환자들에게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인지 도무지 모르겠다”는 회의적인 입장을 취했다.
그는 “환자가 정확하지도 않은 온라인 수명계산기를 두드려본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이 무엇이 있겠느냐”며 “이는 감정적 혼란만 불러올 뿐 치료방향에 대한 환자의 생각이나 삶의 질을 개선하는데 아무런 영향도 주지 못한다”고 잘라 말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에게 남겨진 시간이 얼마인지 알고 싶어 한다고 주장하는 스미스 교수는 고령자와 환자들 “모두”가 그들의 예후에 대해 듣고 싶어 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환자들과 예상되는 잔여수명에 관한 대화를 나눌 때에는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불편한 진실’을 약 먹이듯 억지로 주입시킬 필요는 없다는 뜻이다.
그러나 그와 루벤, 카사레트는 기회가 닿을 때마다 고령 환자들과 잔여수명에 관해 의견을 나눈다고 털어놓았다. 온라인 ‘잔여수명 계산기’를 탐탁지 않게 여기는 메이어도 임종에 관한 진솔한 논의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공감했다.
죽음과 남은 시간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환자가 치료를 받는 목적을 정확히 설정하고 얼마가 됐건 삶을 정리하는 데 도움을 준다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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