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벨이 급하게 울렸다. 수화기 저편에서 아빠의 목소리가 들렸다. 한국까지 오는 데 비행기 값이 많이 드냐고 물으신다. 유학 생활이 어떠한지 뻔히 아시기에, 네가 보고 싶으니 왔으면 좋겠다고는 말씀하시지 못하고 그렇게 둘러서 말씀하신 것이다. 보통 때는 많이 둔한 나이지만, 그 날은 전화를 끊고 나서 직감적으로 알았다. 서둘러 아빠를 만나러 가야 한다는 것을.
우리 가족이 미국에 오기 1년 전에 아빠는 간암 진단을 받으셨다. 우리가 한국을 떠나올 때까지만 해도 상태가 그리 나쁘지 않았는데, 그 날의 전화는 뭔가 심상치 않음을 암시했다.
급하게 한국에 도착해서 만난 아빠의 모습은 내 상상을 초월했다. 젊은 시절 매일의 운동으로 멋진 근육을 자랑하셨던 아빠가 이제는 다른 이들의 도움 없이는 거동을 못하시는 지경에 이르렀다. 초췌한 얼굴과 앙상한 몸으로 두 주간 침대에 누워 계셨단다. 복수가 차서 많이 힘들어하시는 아빠가 나를 보고서 처음 하셨던 말씀은 “우리 소란이를 보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였다. 우리는 함께 안고 울었다.
벌써 7년 전의 일이다. 그렇게 아빠와의 마지막 일주일을 보내고 아빠를 떠나보낸 것이. 오늘 아들의 박사 과정 졸업식에 참여하려고 한국에서 방문하신 팔순이 다 된 시어머니를 보면서 나는 아빠 생각에 잠시 목이 메인다. 딸이랑 사위랑 미국에 공부하러 간다고 좋아하셨는데, 아빠는 미국 땅을 밟아 보시지도 못한 채 하늘나라로 가셨다.
그러고 보니 나는 한 번도 아빠 얘기를 제대로 들어드린 적이 없는 것 같다. 내 기억에는 아빠 인생의 아주 작은 단편들만 몇 개 있을 뿐, 그 조각들에 새겨진 눈물과 웃음과 고민은 제대로 들여다본 적이 없다.
오늘 나는 아빠에게 이렇게 고백해 본다. “아빠, 이 세상에서 나를 가장 많이 사랑해주신 아빠가 있어서 참으로 행복했습니다. 고맙습니다. 그리고 마음을 헤아려드리지 못해 많이 죄송합니다. 보고 싶습니다.”
민소란 / 한국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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