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장도영 장군에게 빚을 지고 살면서 빚을 지불하지 못한 채 그의 별세소식을 일간지 보도에서 읽었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사실 나는 그의 “망향”을 읽으면서 그분에게 내가 진 빚을 이제 지불해야겠다고 다짐하고 있었다. “장 장군, 정말 그때 미안했습니다.” 이 말이 그에게 진 빚이다.
나는 그와 시카코 호텔 로비에서 만났다. 1972년 봄 미국 중서부정치학회가 열린 시카고의 호텔 로비에서 나는 그가 장도영 장군이라는 직감을 갖게 되었고, 그에게 접근해, “장도영 장군이시요!” 그렇게 물었다. 그의 대답은 “그렇습니다.” 그때 내가 던진 말은, “장 장군, 당신 같은 장군 때문에 우리조국이 이 모양이야! 치사한 x!”이었다. 그때 동행한 그의 부인이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갔다.
그와 나와의 조우는 한순간에 끝났지만 오래 내 기억 속에 남아 있다. 나는 그때 조국의 민주주의가 박정희 장군의 쿠데타로 망가졌고, 장도영 장군은 그 당시 육군참모총장으로 장면 총리와 박정희 장군사이에 양다리를 걸친 비열한 사내라고 생각하고 있었을 때였고 나는 한국에 돌아갈 수 없는 반체제 시인으로 박정희 정권에 반감을 갖고 있었다.
세월은 흘렀고 박정희의 공과에 대한 다른 생각을 갖게 되었다. 공이 과 보다 크다는 결론은 그가 성취한 경제발전이었다. 그리고 경제발전을 성취한 그의 두뇌의 힘이었다. 다른 정치인들이 1960년대, 70년대를 지배했더라면 한국은 아직도 가난속에서 탈출하지 못했으리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박정희 권위주의시대를 늦게 인정한 셈이다.
장도영 장군의 회고록, ‘망향’을 읽으면서 그의 인생여로를 알게 되었고, 그와 박정희와의 인간관계, 그리고 박정희의 쿠데타와의 관계를 자세히 알게 되었다. 장 장군은 박정희의 쿠데타 음모를 부하들 정보에 의존하게 되었고 그가 신뢰하고 있었던 부하들은 모두 쿠데타를 은밀하게 진행하던 자들이어서 그는 한 마디로 “당했다”고 고백하고 있다. 장면 총리로부터 쿠데타 음모를 탐지해 달라는 부탁을 받고도 는 자기 부하들에게 다시묻고 “아니라”고 대답한 “무능한” 육군 참모총장이었다. 한국전쟁의 포화 속에서 서로 믿고 싸우던 전우들을 그는 너무 믿었던가, 아니면 인간관계를 너무 정직하게 믿고 있었던 장군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쿠데타 발발 후 메그루 주한미군 사령관은 장 장군에게 박정희가 동원한 3,400명 병력을 진압하도록 압력을 가했으나 장 장군은 유혈사태를 거부하면서 쿠데타를 지지하는 참모총장이 되어 버린다. 그러나 그는 사회질서를 회복한 후 군은 바로 막사로 돌아가고 정치를 정치인들에게 맡겨야 한다는 주장을 일관해 박정희로부터 외면당하며 감옥을 가게 되고 결국 미시간대학으로 망명생활을 강요당한다. 그는 끝까지 박정희와의 인간관계를 회복할 수 없었고 한국에 돌아갈 수 없었다. 그는 박정희의 집권이 가져온 경제발전을 인정하면서도 박정희의 공이라기보다 한국군의 애국심, 근대화 공으로 돌리는 듯하다.
‘망향’은 고향을 그리워하는 그의 심정을 잘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그가 1961년 쿠데타를 진압할 수 없었던 상황이 결국 박정희로 하여금 조국의 근대화를 가능하게 했다는 결론을 내리게 한다. 나의 모순된 결론이다.
내가 그의 ‘망향’을 읽고 그에게 1972년 시카고의 한 호텔 로비에서 모욕을 주었던 일을 사과하려 한 뜻은 그의 무능을 불인정 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가 군사정변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지하지 않았다는 그의 고백을 진솔하게 받아들여 적어도 “양다리를 걸친 치사한 x”이라는 나의 젊은 시절의 언사를 용서해 달라고 전하고 싶은 것이었다.
이제 그는 갔고, 나는 이 글로 유명을 달리한 장 장군에게 용서를 구한다. 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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