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쯤 그 사람도 가을이 되었을까// 잎새마다 프리즘을 스치다 멈춰버린 빛들의 아름다운 슬픔// 눈 먼 바람 마른 잎 흔드는 소리 세월이 지는 소리……//
지금 나뭇잎들은 생의 마지막 유서를 쓰고 있는가. 잎새마다 타오르듯 붉어지다 지쳐서 덧없이 지는 단풍잎들을 처연히 바라본다. 바람 부는 대로 휩쓸리던 낙엽이 차창에 부딪치며 길을 묻는다. 어쩌면 훗날 내가 돌아가야 할 결국을 지는 잎으로 미리 보여주는 듯도 하다.
가을에는 잘 익은 과일 앞에서도 참회하는 마음이 생긴다. 유난히 무더웠던 지난 여름을 잘 견딘 세월만큼 무르익어 제 전부를 내어주는 밤, 대추, 능금, 배, 포도, 감……자연이 베푸는 것들을 한껏 누리기만 할 뿐 나는 누구에게 무슨 소용이 있는 사람이던가.
몇 해 전 이맘때 쓴 위의 ‘먼 그대’ 라는 시의 일부를 눈으로 읊어본다. 가을이면 병처럼 도지는 그리움은 늙지도 않는가 보다. 바다 건너 누군가 손으로 써서 보낸 편지라도 우체통에서 발견하고 싶은 계절이기도 하다. 문득 내가 있어야 할 곳에서 너무 멀리 떠나온 듯도 하고 옛 친구들에게서 잊혀진 채 외지에서 사는 쓸쓸함이 아프다..
‘모홍크 산장’ 으로 1박 2일 여행을 떠났다. 토요일 아침 일찍 일행과 함께 애난데일에서 출발하는 여행사 버스에 오르니 수학여행을 가는 기분이다. 그런데 차가 출발할 무렵에 다른 행선지로 떠나는 여행사 직원이 우리 차에 와서 사람을 찾는다. 우리 차에는 한 사람이 더 탔다고 하고, 그 차에는 한 사람이 부족하다는데 잘못 탔다는 사람이 없다. 나중에야 한 사람이 자기인 것 같다며 출구 쪽으로 나오는 여인에게 가이드가 이름과 여행가는 곳을 확인 차 물으니 잘 모르겠다고 한다. 그야말로 ‘이름도 몰라요 성도 몰라요?’ 하며 우린 모두 한바탕 웃었다. 그 가을 여인은 행선지도 모르는 채 한 사람이 모자라는 쪽으로 갔다.
우리가 탄 차는 메릴랜드 코리안 코너와 엘리콧시티에서 여행객을 더 태우고 가게 되어있었다. 차가 출발하자 마자 이번에는 노인 한 분이 가이드에게 차를 30분마다 한번씩 화장실에 들리도록 하라고 당당하게 주장 하셨다. 가이드도 나처럼 황당했던지 말이 없다. 그러자 그분이 고함을 치기 시작해서 이를 어찌할꼬 하던 차에 코리안코너에 차가 도착했다. 결국 그 노부부는 여행비를 돌려 받고 집으로 돌아 가셨다. 이 또한 올 가을에 있었던 해프닝 이었다.
여행을 할 때 가이드의 의무를 주장하기 보다 가이드에 대한 여행자의 매너가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적어도 우리가 가는 목적지에 대해서 만큼은 가장 잘 아는 사람이다. 우린 그가 보여주는 만큼 볼 수 있고 그가 설명해주는 만큼 알 수 있으며 그가 친절한 만큼 즐거운 여행이 될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모홍크’ 라는 말은 인디언 말로 ‘천상의 호수 (Lake in the sky)’라는 뜻이라고 한다. 가서 보니 정말 아름다운 천상의 호수였다. 부쉬킬 폭포는 물빛이 검붉었다. 까닭을 물으니 폭포 주위의 나뭇잎이 떨어져 함께 녹아 흐르기 때문이라 한다. 그 물길이 흘러가면서 주변 나무들에게 다시 거름물이 되어줄테니 숲은 더욱 청정하리라. 이런저런 해프닝은 있었지만 여행을 잘 하고 무사히 돌아오는 버스 속에서 우리의 만남은 우연이 아니라는 노래를 함께 부르며 동행했던 사람들과 아쉬운 석별의 정을 나눴다.
가을엔 시인이 아니더라도 먼산 보고 헛소리라도 해볼 일이다. 봄날의 연둣빛 나뭇잎들이 목숨 것 푸르렀던 여름 한철 지나니 제 그림자만큼의 흙으로 돌아간다. 자연이나 사람에게나 계절만큼 영향을 미치는 것도 없는 것 같다. 이제 바람이 불면 벌레 먹은 상처조차 아름다운 저 수억의 단풍잎들이 모두 본향으로 돌아가리라.
살면서 얽매일 수 밖에 없는 것들로부터 조금씩 자유로워지고 싶다. 경제적인 여유가 없을수록 정신적인 여유가 우리들 삶의 버팀목이 되어야 하리. 매일의 사소한 일상들이 생의 씨줄과 날줄이 되어 나를 이루어가고 있음을 새삼 느끼게 하는 것도 가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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