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열린 2013 선댄스 영화제에서 이스라엘 작가 에트가 케렛(Etgar Keret)의 단편을 영화로 만든
라는 작품이 발표되어 호평을 받았다.
“우리 주머니 속에는 무엇이 있나” 라는 제목처럼 이 영화의 주인공은 혹 쓸데없는 물건이라는 혐의를 받을 수 있을 만한 것들을 주머니에 잔뜩 넣어 다니는 인물이다. 그는 어느 날 우연히 그의 주머니 속 물건이 필요한 한 매력적인 이성을 만나 그녀를 돕고, 그 과정에서 결국 평소 꿈꿔온 아름다운 관계를 시작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내용의 내레이션을 통해 자신의 주머니 속 잡동사니들의 효용을 설파한다.
주인공은 비록 미지의 타자를 향한 한없는 배려심의 발로는 아니지만, 적시에 타인, 그것도 선뜻 호의를 베풀고 싶을 정도로 호감 가는 누군가의 절실한 필요를 채울 수도 있는 자신의 평소 행동습관을 자랑하며, 이것이 인생의 ‘결정적 순간(the moment of truth)’을 가져다줄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자신의 필요로 주머니 속에 넣어놓은 어떤 물건이 때로 다른 누군가의 절실한 필요를 채울 수 있다는 전제로 시작하는 이 영화는, 우리들이 뭔가를 주고받는 행태가 ‘적합한 타이밍’이란 모터를 달기만 하면 감정의 교류, 더 나아가 공생으로 기능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새로운 인간관계, 혹은 타인과의 더욱 친밀한 만남을 꿈꾸는 현대인들을 위한 짧지만 흥미로운 제안이라는 생각이 든다.
주머니 속이나 가방 안은 철저하게 개인적인 공간이다. 그 안을 무엇으로 채운다 해도 제삼자가 관여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그런 공간에 타인을 위한 사유를 끼워 넣어보자는 작가의 시도는 그래서 신선하다. 그 공생을 통해 결국 자기 자신의 행복을 찾는 것으로 이야기를 마무리한다 해도 말이다.
우리는 평소 필요하다고 여기는 것들을 주머니(혹은 가방)에 넣고 다닌다. 언제 넣어놨는지 기억조차 하지 못하는 물건부터, 하루의 자취를 돌아보게 하는 꾸깃꾸깃한 영수증, 입장권 등 지니고 다니는 물품들만 봐도 주인의 습성이나 성향, 관심사 등을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각자의 주머니 속에 들어있는 물건들을 온전한 개인물품이라 부르기 쉽지 않다. 일례로 지갑 안에 있는 많은 물건들은 타인에게 자신의 존재를 확인시키기거나, 경제활동 등 사회 안에서 필요한 상호작용을 위한 것들이 아닌가.
그럼에도 오늘날처럼 인간의 고립감을 논하던 때는 없었던 것 같다. SNS 등을 통해 강박적으로 자신의 삶을 공유하는 듯하지만, 점점 텅비어가는 자신을 토로하는 목소리는 이곳저곳에 넘쳐난다. 그래서 충분히 ‘은밀한 곳’이라고 부를 수 있는 개인의 주머니 속을 소재 삼은 이 영화에 많은 관객들이 관심을 갖지 않았을까.
우리는 이미 자신의 주머니 속에 세상을 담고 산다. 가진 세상의 크기에는 분명 차이가 있지만, 사회의 일원으로서 세상과 맺고 있는 관계의 증거라 할 만한 것들을 품고 사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런 상호작용의 근거들이 반드시 현대인들이 그토록 갈망하는 공생을 의미한다고 할 수 없을 때가 많다는 것이 문제다.
영화에서처럼 누구나 인생의 결정적 순간을 꿈꾼다. 동시에 우리는 마땅히 가져야 한다고 느끼는 모든 것을 가질 수 없는 냉엄한 현실과 맞닥뜨리게 된다. 하지만 이런 하루하루가 꼭 절망일 필요는 없다. 인간의 필요와 부족함은 언제든지 있어왔으며, 이 사실이 향후 새로운 관계를 꿈꾸게 하는 원동력이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 역시 영화에서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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