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 6.25 전쟁이 일어나고 1년 후, “그 동안 단절 되었던 교육행정을 전시체제로 바꾸고 각급학교는 9월 새학기부터 학업을 계속 한다” 라는 문교부의 지침에 따라 우리 대학은 피난처인 부산 동대신동 언덕길을 따라 판자집 가교사를 짓고 학업을 계속하였다. 오전에는 강의를 받고 오후에는 군사훈련을 하는 커리큘럼, 군사 훈련 과목에는 종, 횡 그리고 우산형 산개 행진과 게릴라전을 위한 8부 능선 타기 등 군사전범에 따른 것이었다. 훈련이 끝나면 각 소대별로 행렬을 갖추고 군가를 불러가며 학교로 돌아왔다. 군복무는 졸업할 때까지 연기된 상태였다.
우리네 연배들은 어쩌면 전쟁시대 동아리라 불릴 만하다. 내가 철들기 시작할 무렵 일본은 만주사변을 일으켰고 얼마 안되어 세계 2차 대전 그리고 한국전쟁에 이어 한국군이 직, 간접으로 참전 했던 월남전 등 전쟁의 고리는 끝일 날이 없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성장한 나는 나도 모르게 군가 마니아가 되어 버렸다. 일종의 시대적 부산물이라 할까. 세상에는 많은 군가들이 있다. 그중의 백미는 역시 ‘기마대의 행진(Light Cavalier)’일 것이다. 트럼펫이 높이 울리고 드럼소리 두둥둥 말굽소리에 액센트를 둔 이 기마대의 행진곡은 언제 들어도 용기가 솟아오른다. 씩씩한 군가조의 애국가도 많다. “총을 들어라!“로 시작하는 불란서의 애국가이자 혁명가인 ‘라 마르세이유(La Marsellaise)’, 독일의 애국가 ‘지구를 넘어서’ 그리고 ‘오! 너는 보았느냐 아침 햇살을 받고 보루에 우뚝 서 펄럭이는 저 성조기를’ 로 시작하는 미국 국가. 지난밤 독립전쟁에서 모든 것이 파괴되고 전멸 되었으리라 믿었던 와륵의 잔해에서 성조기가 펄럭이고 있다. 프랜시스 스캇 키는 그 감격의 장면을 시에 담아 놓았다. 적군 아군의 편견 없이 살펴본 군가 들 중엔 훌륭한 작품들이 많다. 일본이 자랑하는 ‘군함 행진곡’을 비롯 전쟁말기에 나온 “너와 나는 같은 항공대에서 피어 낳던 꽃. 혈육을 나눈 사이는 아니지만 아깝도다 이별이구나” 남쪽 하늘의 구름을 뚫고 1번기, 2번기 계속 해서 사라져 가는 가미가제 특공대를 보내면서 부른 ‘동기의 꽃’은 가슴을 찡하게 만든다. 군가 문화가 미숙했던 남북전쟁 당시 북군에 패한 남군이 고향으로 철수 하면서 부른 노래 “나 지금 조지아로 돌아가노라/ 리 장군의 노래 불러 가며/ 나 지금 조지아로 돌아가노라”는 출처 미상의 구전으로 내려오는 군가라고 기록 되어 있다. 한편 우리나라 북쪽의 군가인 ‘적기가’의 가사 “비겁한 자여 갈 테면 가라. 그 (깃발) 밑에서 전사 하리라--” 인민군 창설 때에 많은 장병들이 남쪽으로 탈출해 나갔다. 체념의 상심을 털고 넘어서는 결연함이 엿보인다.
60년대 후반부터 일기 시작한 이민초기 이곳 한인사회에는 자주 계모임을 가졌다. 식사 후엔 의례 여흥시간이 있고 노래들을 불렀다. 뽕작이라 불리던 유행가에 어눌했던 나는 차례가 오면 군가를 불렀다.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 톤을 높여 불러대는 이 군가를 듣고 섬찍 하였던 분위기는 그러나 곧 손 박자를 쳐가면서 고달픈 이민생활의 시름을 한껏 풀곤 하였었다. 워싱턴DC 16가에 한인 교회가 하나 있었고 가라오께는 아주 먼 훗날에나 등장하는 옛날 이야기이다. 올해로 나는 인생의 8부 능선을 훌쩍 넘어섰다. 붉은 태양의 찬란한 낙조를 바라보면서 이제 군가중의 군가를 소리 높여 불러볼 참이다. “믿는 사람들은 군병 같으니 앞서 가신 주를 따라 갑시다. 우리 대장 예수 기 를 가지고 접전하는 곳 (battle-field) 가신 것 보라” 하늘나라 소집장이 날라 올 때 까지 주만을 따라 가는 나의 행군은 오늘도 이렇게 계속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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