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동선 전 한인회장
이른 새벽, 봄을 찾아 나서기로 했다. 제법 차가운 한기가 살 속으로 스민다. 그토록 매몰찼던 겨울은 제국의 패잔병처럼 잔설로 남아 음지 한곳에 몸을 숨기고 있었다. 내가 그 겨울을 지나온 것이다.
아직 성혼하지 않은 아이들과 갑자기 미망인이라 불리게 된 친구 아내의 오열 속에 그가 떠나던 날. 하늘을 가르는 차가운 칼바람과 온 땅을 메울 듯 한 눈보라를 기억한다. 그 밤은 참으로 추웠었다. 먼 길을 홀로 떠나는 그의 안타까운 마음을 미처 헤아리기도 전에 마주 잡았던 손을 나는 아프게 놓아야 했다.
가슴이 먹먹하여 소리라도 지르고 싶었으나 그건 내 몫이 아니었다. 그와 이별하던 순간 겨우 입을 열어 마지막 인사를 했다. ‘사랑합니다. 그리고 당신의 사랑을 늘 기억하겠습니다’ 소리가 되어 나오지 않는 나의 들썩이는 입술을 바라보며 그 또한 맞잡은 손끝으로 작별을 전해 왔다. 서로 말은 하지 않았으나 손에서 손으로 전해지던 그 느낌을 잊을 수가 없다.
그 겨울이 갔다. 아니 그 겨울을 보내려 한다. 내 안에 가두어 두었던 그를 이제 보내기로 했다. 그를 위해…. 그리고 나를 위해… .어느 순간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이 빛을 향해 고개를 들고 있었다. 삶은 그런 것이었다. 가끔은 가야할 곳을 찾지 못하고 어둠속에서 헤매지만 결국 사랑으로 마주 선 곳에서 희망을 찾아내고 있는 것이다. 그 긴 겨울 눈 속에 갇혀있던 생명들이 어느새 언 땅을 비집고 싹을 틔워내며 살아있음을 알리고 있다.
어느 먼 훗날 또 다른 겨울 앞에 쓰러지고 목이 베일 지라도 새 생명을 잉태한 임산부처럼 그 숭고함은 차라리 눈부시도록 거룩했다. 키 작은 어린 싹 앞에 등을 굽혀 손으로 더듬어 본다. 손에 와 닿는 대지의 소리, 땅 밑으로 흐르는 물의 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오늘도 엄청난 무게로 짓누르는 삶은 나를 또다시 주저앉히리라 그러나 내가 디딘 이 땅이 봄 이듯이 사순기간동안 부활의 희망을 기다리며 기쁨으로 뒤를 돌아보듯 열심히 앞으로 나아가는 꿈을 꾼다. 그 길 위에서 정호승님의 아름다운 봄길을 만났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 / 길이 있다 /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 길이 되는 사람이 있다 /
스스로 봄길이 되어 / 끝없이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
강물은 흐르다가 멈추고 / 새들은 날아가 돌아오지 않고 /
하늘과 땅 사이의 모든 꽃잎은 흩어져도 / 보라 /
사랑이 끝날 곳에서도 / 사랑으로 남아 있는 사람이 있다 /
스스로 사랑이 되어 / 한없이 봄길을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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