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진아 광고전략가 Young & Rubicam in Kuala Lumpur
얼마 전 대학에서 잠시 강의를 했을 때 수강생이었던 학생이 오랜만에 연락을 해왔다. 연락을 해온 이유는 진로 상담. 대학교 4학년인 그녀는 졸업 후의 진로에 대해 무척 고민스러워 했다. 개인적인 친분이 전혀 없는 내게 연락을 해온 걸 보면, 그녀의 고민의 무게가 느껴진다. 그녀에게 난 지푸라기 같은 존재일런지 모른다. 직접적인 도움을 원해서가 아니라, 누구라도 잡고 하소연을 하든, 충고를 듣든, 도움을 호소하고 싶은 마음.
십수년 전, 첫 직장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한 나도 그런 심정이었다. 몇 달을 다니고 나니, 이런 게 직장생활인가 싶은 생각도 들고, 과연 내게 잘 맞는 일인 건지 고민스럽고, 평생 이렇게 직장 생활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 숨이 막혀오기도 했다. 그 당시 나도 학교 선배며, 조언을 들을 만한 사람들을 수소문해서 연락하고 찾아가기도 했었다. 학교 선배들을 만나 궁금한 걸 물어보고 조언을 들은 것이 내 진로에 얼마나 도움이 되었는지 명확히 알기는 어렵다. 그 순간 답답했던 마음이 조금 풀리는 정도에 그쳤을 수도 있고, 막연했던 고민이 조금 구체화되었을 수도 있다.
십여년이 지나 그 시간들을 되돌아보니, 내가 가졌던 그 시절의 고민의 답이 조금 보인다. 십여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말이다. 어떤 일이 내게 잘 맞는지는 다른 공부와 일을 해보면서 알게 되었고, 내가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는 하고 싶은 다양한 활동을 해보면서 조금 더 알게 되었다. 당장 알고 싶은 질문과 고민의 답이 그 순간 찾아지는 경우는 드물다. 노력하는 시간 속에서 아주 조금씩 그 답이 스며 나오기 때문이다. 답은 언제나 내 안에 있다는 말처럼, 내 경험을 통해 깨달아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난 그녀에게 어떤 이야기를 해줄 수 있을까. 인생의 고비마다 나도 많은 사람들의 조언과 도움을 받았다. 인생을 조금 앞서 산 사람들만이 해줄 수 있는 그런 이야기들. 때론 쉽게 받아들여진 이야기도 있고, 그 순간에 이해하기 어려운 이야기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이야기들이 내가 내렸던 많은 선택의 밑바탕이 되었을 것이다. 무언가를 새롭게 시도하려고 할 때, 하기 힘든 이유가 백가지일 때, 주변에서 힘을 주었던 친구와 가족, 지인들. 내가 자신 없어 할 때에도 내 능력을 믿고 잘 할 수 있다고 북돋아 준 그들이 있었기에 힘든 순간에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다.
내가 그녀에게 해줄 수 있는 이야기는 하나. 원하는 것이 있으면 끝까지 노력해서 직접 해보라는 것. 힘들어 적당히 타협하거나, 가보지도 않고 스스로 안다고 착각하지 말 것.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길이 보일 것이라고.
해보고 아는 것과, 해보지 않고 아는 척 하는 것. 인생을 살아가는 전혀 다른 두 가지 방식이다. 후자가 고생을 덜 할 수도 있다. 덜 고민하고 덜 부딪히고 덜 아플 것이다. 하지만 해보고 아는 자는 자신의 한계를 몸소 깨닫기도 하고,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어 스스로 성취하는 경험을 통해 자신을 더욱 더 알아간다. 해보지 않고 아는 것은 현자의 책을 읽고 어떻게 사는 것이 좋은지를 읊어대는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실제 인생에서의 어려운 문제에 봉착하면, 아무런 해결책도 찾지 못한 채 우왕좌왕하게 될 뿐이다.
물론 십여년 후에, 돌아돌아 같은 자리로 되돌아올 수도 있다. 같은 고민을 십년 넘게 할 수도 있고. 하지만 인간이 죽을 것을 알지만 살기를 포기할 수 없듯, 어차피 가 봐도 별 것 없다는 결론에 이를지라도 스스로 가봐야 안다. 그렇지 않으면, 끝끝내 해보지 못한 아쉬움과 회한으로 남거나, 패배감에 사로잡혀 살거나, 해봤자 별거 없다는 태도로 무엇 하나 시도하지 못하는 소심한 인생을 살게 된다.
누구도 해답을 줄 수 없는 인생길, 많은 선배들이 내게 힘이 되었듯, 나도 그녀에게 작은 힘이 될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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