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은 한인축제로 LA 전체가 즐거웠다. 미국에 살면서 처음 가본 LA 한인축제는 “한인들의 위상을 느꼈다”거나 “미국 주류사회에 미칠 한국문화의 영향력을 느꼈다”는 등 공문서에 나올 법한 표현을 떠나 그 자체로 즐겁고 정겹고 신나고 흥겨웠다. 마치 한국에 가 있는 듯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시골 장터의 분위기도 재미있었고, 무엇보다 하루 가족 나들이하기에는 손색이 없었다.
몇몇 친구들과 한인축제를 구경하고 나서 대화가 이어졌다. 바쁜 생활 속에 가족들만 바라보며 하루하루 살다보면 미국 속 한인들의 위상 같은 문제는 생각해 볼 겨를도 없었던 차에 모처럼 이를 생각해 보는 기회이기도 했다.
그런데 내가 발견한 흥미로운 점은, 같은 업종이라도 각각 미국 회사와 한인 회사에 다닐 경우, 그 업종의 프로페셔널리즘에 대한 친구들의 평가가 다르다는 것이다. 미국 은행에 다니는 친구와 한인 은행에 다니는 친구 그 둘의 직급과 월급이 비슷하다 해도, 한인 은행에 다니는 친구는 왠지 미국 은행에 다니는 친구 보다 좀 못해 보이는 느낌이 있다는 사실이 폭로되기 시작했다.
대학교에서 한국학을 강의하는 교수와 같은 대학교에서 정치학을 가르치는 교수를 얘기할 때 왠지 한국학을 강의하는 교수는 정치학을 강의하는 교수만큼 존경과 동경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미국 기업에 들어가 중간 관리직 일을 하는 사람이 한인 기업에서 열심히 일해 높은 자리에 오른 사람 보다 더 동경의 대상이 되는 미묘한 차이를 읽게 되었다.
물론 미국 주류사회의 은행, 기업, 대학교 정치학과에서 일하는 한인들은 대단하다. 그들은 미국사회에 진출한 선두주자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 은행이나 기업의 브랜드 가치는 처음부터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그들이 세운 것도 아니다. 브랜드 가치를 세우기 위해 누군가 이미 많은 희생과 노력을 했을 것이고, 그 결과 그 기업들은 대표기업이 될 수 있었다.
그렇다면 한인들 스스로 모여서 자신들의 기업을 세우고, 브랜드 가치를 높이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면, 그리고 얼마만큼 성과를 이뤘다면 그것은 대단한 것 아닐까. 한인들이 모여서 뭔가를 이뤘다고 하면, 그것 역시 정당하게 평가받았으면 한다.
흔히 표현하는 ‘미국 주류사회에 진출하기’는 기존의 미국 기업, 문화에 한인들이 참여하는 방법도 있지만, 한인들이 바깥에서 만들어낸 브랜드가 미국의 주류 기업, 문화로 세워지는 방법도 있다. 한인 기업이라고 해서 그 가치가 상대적으로 낮게 평가 받는다면 공평하지 않다.
우리 마음속에 혹시라도 경력이나 경험, 성과를 객관적으로 생각하는 합리적 평가보다 미국 것을 무조건 좋게 보는 사대주의가 깊이 박혀 있지는 않은 것일까? 한인축제를 계기로 생각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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