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대학생들의 취업난이 점점 심각해지고 있는 것 같다. 청춘이라는 말이 무색하게도 오늘날의 2030은 스스로를 3포 세대(연애, 결혼, 출산 포기), 5포 세대 (내집 마련, 인간관계도 포기), 7포 세대(꿈, 희망도 포기), 심지어 다포세대 (전부 다 포기) 라고 부른다.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듯 좁디좁은 취업의 문을 통과하기 위해 이들은 경험보다는 스펙을 쌓고, 열정을 쏟기보다는 열정페이(열정을 빌미로 한 저임금 노동)를 강요받는다.
최근에는 문? 사 ?철로 대표되는 인문계열은 물론이거니와, 전통적으로 취업이 잘 되던 상경계열 학과들까지도 인기가 시들해지고 있다. 반면 공학계열과 자연계열은 ‘이공계 우대’ 현상과 맞물려 인기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교육부의 ‘2014 전국 4년제 대학정원 및 취업률’ 자료에 따르면 문학계열 전공자의 평균 취업률은 44.9%인 반면 공학계열 전공자의 평균 취업률은 67.4%로, 20% 포인트 이상 차이가 난다. 현실이 이렇다 보니 취업률 낮은 전공을 기피하는 것을 탓하기도 어렵다.
재미있는 점은 2000년대 초반에는 지금과 180도 다른 상황이었다는 점이다. 인터넷을 조금만 찾아보더라도 ‘이공계 기피’ 현상을 다룬 예전 기사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불과 10여년만에 ‘이공계 기피’에서 ‘이공계 우대’로 트렌드가 바뀌었다. 물론 제조업이 근간이 되는 한국에서 실력있는 엔지니어들이 많아지고 그들이 좋은 대우를 받는 것은 환영할 일이다. 그러나 한국이 테크 강국이 되기 위해 필요한 것이 엔지니어뿐일까?내 경우, 삼성전자, 구글, 아마존 등 다양한 테크 기업에서 일해 왔지만 전공은 인문학이었다. 인문계열로 입학해 영어영문학과를 전공으로 정한 후, 영어학과 음운론, 셰익스피어 고전은 물론이고 영미 현대소설과 영시를 공부했다. 가장 재미있었던 수업은 유명소설을 원작으로 만든 흑백영화들, 예를 들어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1939)나 ‘위대한 개츠비’(1974)를 감상하고 시대상을 비평하는 수업이었다. 수업 면면만 보면 프로덕트 매니저로서 현재 하고 있는 일과 연관성을 찾기 힘들다.
하지만 테크 기업을 비롯 대부분의 기업이 추구하는 바는 ‘사용자(고객)들의 필요에 맞는 앞선 제품을 경쟁사보다 빨리 그리고 효과적으로 시장화’ 하는 것이다. 이점을 생각해보면, 결국 사람, 경쟁사, 시장에 대한 이해도가 매우 중요하고, 이는 ‘1+1=2’ 와 같은 공식에 의해 결정되지 않는다는 점을 알 수 있다. 혹자는 이런 이해와 분석조차도 첨단기술에 의해 이루어질 수 있다고 반박할 것이다. 실제로 최근 테크 기업들은 빅데이터를 사용하여 대용량 데이터를 수집하고 분석하고, 그에 맞추어 제품이나 시장전략을 계발하기도 한다.
그러나 아무리 데이터가 많은 것을 말한다 해도, 영업과 마케팅 등 기업활동의 많은 부분은 여전히 직관적이고 다각적이며 포괄적인 이해를 필요로 한다. 특히 신제품의 경우 딱 맞아떨어지는 과거 데이터가 없는 경우가 종종 있다. 예를 들어, 최근 아마존이 출시한 신제품의 명칭부터, 광고 디자인, 마케팅 계획을 제안하고 결정할 기회가 있었는데, 1+1=2와 같은 공식이 통하지 않는 이런 상황에서야 말로 사물과 상황을 분석하고 판단할 수 있는 기본 소양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10여년 뒤 지금과는 정반대의 트렌드가 또다시 올 수도 있다. 이공계열이 우대받든 인문계열이 우대받든 상관없이 결국 중요한 점은, 2030 젊은이들이 트렌드에 따라 흔들리지 않고 본인들이 하고 싶은 공부를 추구하고, 그렇게 얻은 지식과 경험으로 기업과 사회에 이바지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기업들도 인문학 전공자들을 기피하기보다 그들이 갖춘 소양을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지를 고민해보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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