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킷리스트’(Bucket List)는 인생을 살아가며 꼭 경험하거나 달성하고 싶은 일들을 적어 놓은 목록이다. “죽다”라는 의미의 “kick the bucket”에서 파생된 이 단어가 유명해진 배경에는 2007년 개봉한 동명의 영화가 있다. 우리에게도 친숙한 두 배우, 모건 프리먼과 잭 니콜슨이 죽기 전에 꼭 해보고 싶었던 일들에 함께 도전하며 삶의 마지막 순간을 능동적으로 즐기는 모습이 잔잔한 감동을 주었다.
우리는 살면서 끊임없이 ‘해야 할 일’ 리스트를 작성하고 지우고를 반복한다. 학생일 적 나의 리스트에는 ‘언제까지 리포트 쓰기’ ‘언제까지 토플점수 따기’ ‘언제까지 입사원서 내기’와 같은 일들과 함께 ‘언제 누구랑 밥 먹기’ ‘언제 누구랑 어디로 놀러가기’ 등의 일들이 적혀 있었다. 직장인이 되고나서 나의 해야 할 일들은 리포트쓰기가 보고서쓰기로 바뀌는 등의 작은 차이만 있을 뿐이다. 앞으로 가정이 생기고 자녀가 생기면 새로운 해야 할 일들, 예를 들어 ‘언제까지 예방접종 맞추기’가 추가되겠지만 큰 맥락에서는 별반 다르지 않을 것 같다.
이런 ‘해야 할 일’ 리스트는 효율적으로 시간을 배분하고 우선순위에 따라 일을 끝마치는데 도움이 되지만 근시안적이다. 그래서 다양한 자기계발서들은 ‘3년 계획’ ‘5년 계획’ ‘10년 계획’ 등 중장기 목표들을 세워보라고 권한다. 이런 중장기 목표들은 삶의 방향성을 정의하는데 분명 도움이 되지만, 10년 이후의 목표를 세우기에는 한계가 있다.
버킷리스트는 여타 ‘해야 할 일’ 리스트와는 매우 다르다. 버킷리스트는 다소 허무맹랑해 보일 수도 있다. 버킷리스트가 허무맹랑해 보이는 이유는 여타 리스트들이 이루고 싶은 목표(goals)를 얘기하는 것에 반해 버킷리스트는 하고 싶은 일(things)을 나열해 놓았기 때문이다. 남들이 하니까 나도 하는 일, 남들보다 앞서기 위해서 내가 해야 하는 일이 아닌,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일들을 적은 것이 버킷리스트이다.
또한 버킷리스트에 있는 일들은 언제까지 달성하겠다는 시간적 제약이나 우선순위에서 자유롭다. ‘아르헨티나에서 탱고 배우기’와 같은 일은 올해 달성할 수도 있지만, 20년 후에 달성해도 된다. 또한 ‘백두산 천지 가보기’와 ‘스카이다이빙 도전’은 딱히 우선순위를 정하지 않고 기회가 닿는 대로 달성하면 될 일들이다.
하지만 버킷리스트가 반드시 흥미롭고 도전적인 일만 담고 있는 것은 아니다. 조금 더 진지한 삶의 고민을 담고 있기도 하다. 예를 들어 ‘평생 함께할 수 있는 친구 5명 가지기’나 ‘사후 장기 기증하기’와 같은 일들이다.
부모님의 지인 중에 상당히 멋진 일을 실행중인 분이 계시는데, 미국에 있는 58개 국립공원 (National Parks)을 모두 둘러보는 것이 계획이라고 한다. 여행을 업이나 취미로 하는 것이 아니니, 이 계획을 달성하는데 몇 년이 걸릴 수도 있고 설령 달성하지 못할 수도 있지만 이런 일을 마음에 품고 있다는 것 자체가 참 멋지게 느껴졌다.
필자의 어머니도 멋진 일을 계획 중에 있다. 생애 처음으로 해외 배낭여행을 떠나고 싶다고 하신다. 이때까지 해외여행은 늘 여행사를 통해 다녀오던 어머니에게는 큰 도전이 아닐 수 없다. 같이 가자고 아버지를 설득 중이신데, 과연 이 해외 배낭여행이 성사가 될지 딸로서는 상당히 흥미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만약 이 글을 읽는 독자들 중에 버킷리스트가 아직 없다면, 이번 주말에 끄적끄적 생각나는 일들을 적어보는 것은 어떨까? 한 두 개만 적어도 언제든지 생각날 때마다 목록을 늘려나가면 되고, 언제까지 달성하겠다는 약속을 굳이 하지 않아도, 언젠가 시간이 되고 여유가 될 때 퍼뜩 도전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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