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을 방문하게 되면서 아주 오랜만에 초등학교 동창들을 만났다. 우연히 연락이 된 친구가 모임을 주선해서 만나는 자리였다. 초등학교 졸업 이후 처음 만나는 친구들도 있을 테고, 시간이 많이 흘렀으니 많이 변해 있을 텐데 못 알아보면 어쩌나 하는 걱정도 있었다. 하지만 졸업 후 거의 30년 만에 모인 우리는 만나자 마자 “어머, 너 하나도 안 변했다”를 외치기 시작했다.
가끔 칠순 가까운 할머니들이 동창회에서 만나 “이게 얼마만이니, 너 하나도 안 변했다!” 하고 호들갑 떠는 모습을 보면서 속으로 ‘할머니들 꽤 주책이시네…’ 했었는데 우리가 딱 그 모습이었다.
안 변할 리가 있나. 꼬맹이들이었던 친구들이 이제 그만한 나이의 자식을 둔 아줌마들이 되었는데. 그런데 이상하게도 다들 어릴 때의 모습을 그대로 가지고 있었다. 톰보이 같았던 친구, 천상 소녀 같았던 친구, 입담 좋은 친구, 착하고 배려 많던 친구… 여전히 그 모습을 간직하고 있었다. 정말이지 하나도 변하지 않은 것 같았다.
친구들은 나의 어린 시절을 기억해 주었다. “기억나? 너희 집에 놀러 갔는데 엄마가 과자를 구어 주셨잖아…” “야, 너랑 장난치다 연필로 찔린 흉터 아직도 있다구” 하며 나도 기억이 가물가물한 추억들을 들춰냈다. 흡사 퍼즐을 맞추는 것처럼 각자 기억의 조각들을 꺼내서 그림을 맞춰갔다. 그 시절의 추억을 공유하고 참석하지 않은 친구들의 추억담도 나누면서 우리는 그 시절, 그 교실, 그 시간으로 돌아간 듯 했다.
그때는 공부를 잘하건 못하건, 집안이 가난하건 부유하건, 얼굴이 예쁘건 못생기건 상관 없이 행복하게 지냈던 것 같다. 물론 그 나이에도 나름의 고민과 암울한 시간이 있기는 했었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다 멋지게 포장되는 법이 아닌가.
오랜만에 만났는데도 할 이야기가 샘솟듯 하고, 멀리 떨어져 살았는데도 금세 공감대가 형성되는 것이 신기했다. 결혼하고 아이 키우느라 자신을 돌아볼 틈이 없던 친구들이 옛 추억에 잠길 짬이 생겨 서로 부지런히 안부를 물었다.
첫 모임 후에도 우리는 서로 열심히 문자와 전화를 주고받으며 연락을 했다. 친구들 몇 명이 곧 떠나야 하는 나를 위해 따로 시간을 내줘서 우리는 시외로 나갔다. 연꽃을 구경하고, 사진도 찍고, 맛있다고 소문난 레스토랑에서 수다를 떨며, 우리는 흡사 늘 그래왔던 것처럼 자연스럽고 기분 좋게 추억의 한 자락을 만들었다.
초등학교 동창 모임 후 나는 마음이 따뜻해졌다. 그리고 좋은 기억을 가지고 있어준 것에 진심으로 감사했다. 많은 시간이 흘러도 하나도 어색하지 않고 할 이야기가 샘솟는 친구들. 나의 치부를 고스란히 드러내도 부끄럽지 않을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지. 꼬부랑 할머니가 되어서도 계속 만나 “어머, 너 진짜 하나도 안 변했다”하는 이야기를 오래 나눌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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