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초 건강 관련 개인사에서 중요한 이정표가 되어 버린 수술을 받았다. 몸이 어느 정도 회복되기가 무섭게 학생들의 기말고사 시험지까지 싸들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오랜만에 한껏 어리광을 부리면서 엄마가 해주는 집 밥 얻어먹으며 시험지 채점해서 학기를 마무리할 요량이었다.
그런데 귀국 전 엄마와 전화 통화 중 나누었던 이야기가 계속 머릿속을 맴돌고, 부모님 집은 익숙한 듯 그러나 무언가 불편한 듯한 느낌이다. 집 떠난 지 10년 차인 나의 위치를 새삼 확인시켜 주는 듯하다.
부모 자식 간의 관계도 집집마다 차이가 있다. 나의 부모님은 항상 내게 심리적으로나 육체적으로 “비빌 언덕”이었다. 자주 안부를 챙기는 살가운 딸은 아니지만, 중요한 일을 앞두고 있거나, 기운 빠지는 일이 생기면 반드시 전화 걸어 기운을 충전 받는 그런 언덕 말이다.
유학을 오면서 떨어져 살기 시작한지 10년이 되어도 부모님은 내게 항상 그런 존재였다. 다른 부모들 중에는 이거 해 달라, 저거 해 달라 혹은 이거 서운하다 저거 서운하다 하는 분들도 있지만 나의 부모님은 전혀 그런 적이 없었다.
자식들을 남과 비교하지 않고, 자식들의 삶도 고달플 거라며 배려가 깊다. 그래서 첫손자가 태어나도 육아에 바쁜 남동생 부부에게 부담이 될까봐 사진 한장 보내라는 채근을 못하신다.
그런 엄마가 내가 한국에 오기 전 전화 통화에서 하신 말씀은 이랬다. “너도 손자처럼 오면 반가운데 가면 더 반가운 손님”이라는 것이었다.
당시 몸이 아팠던 나는 한국에 가서 한껏 어리광 부리며 엄마 밥 얻어먹을 생각만 하고 있던 중이었다. 그런 내게 그 말은 아팠다. 엄마는 웃자고 하신 말이라지만, 그냥 웃기에는 너무 슬펐던 말이었다.
귀한 자식도 손자도 데리고 있으며 이것저것 거둬 먹이고 챙겨 주기에는 이제 엄마의 체력이 달리는 가보다 생각하니 슬펐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돌봄을 받는 입장에서 돌볼 사람이 많아진다는 것인가 보다. 성인이 된 후 멀리 떨어져 각자의 생활을 하느라 함께 살지 않게 되다보니, 가끔 집으로 돌아오는 나는 엄마에게 손님 같은 존재가 되어버린 것 같다.
떨어져 있을 때는 안타깝지만, 막상 집에 오면 평소 두 분이 계실 때에는 신경 쓰지 않아 도 되던 매끼 끼니에 과일까지 챙겨주어야 하는 손님이 되어 버린 것이었다.
나는 이제 어리광 부리며 엄마 밥을 받아먹을 게 아니라 딸로서 밥을 해드려야 할 차례인 것 같아 마음이 무겁다. 밥을 하는 게 어려운 건 아닌데, 그냥 좀 쓸쓸하다. 심리적으로 비빌 언덕이 점점 작아지는 것 같아 마음이 먹먹하다. 나는 여전히 받는 데 익숙한 손님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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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지승 매릴랜드대 교육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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