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4월이면 한국도 워싱턴 DC도 연분홍 벚꽃이 봄날을 장식한다. 여리여리 곱게 피어 흩날리는 벚꽃이 누구말대로 잔인할 만큼 아름답다.
지난 주말 학회 참석 차 한국에서 워싱턴 DC를 방문한 지인과 함께 벚꽃 축제가 한창이던 토마스 제퍼스 메모리얼에 다녀왔다. 지인은 “한국과 기후가 비슷해서 여기도 이렇게 많은 벚꽃이 피는 거냐”고 물었다. 그의 물음에 나도 작년에야 비로소 알게 된 조금 서글픈 DC의 벚꽃 이야기를 전했다.
1905년 미국과 일본 사이에는 가쓰라 태프트 밀약이 맺어졌다. 일본의 한국 식민지배와 미국의 필리핀 지배를 서로 묵인하자는 것이었다. 그 직후, 당시 미국의 윌리엄 태프트 대통령 부인이었던 헬렌 태프트가 일본의 벚꽃에 감탄하자 일본 측이 1912년 많은 벚나무를 보내준 데서 워싱턴 DC의 벚꽃이야기가 시작되었다.
이 사실을 모를 때는 마냥 예쁘던 꽃들이 알고 나니 한인으로서는 조금 서글픈 느낌도 들었다. 그래도 과거에 매이고 싶지는 않아서 아름다운 자연은 자연으로 보겠다는 생각을 작년에 했던 것 같다.
그러나 이번에 막상 벚꽃 축제라고 불리며 각종 행사들이 벌어지는 것을 처음 보니, 많은 일본 대기업과 대사관이 후원하며 미국과 일본의 우의를 강조하는 행사였다. 꽃나무를 따라 한참 걷다 보니 일본과 미국의 우정의 탑도 보이고, 그 자리에 서서 설명판들을 읽다보니 생각보다 일본이 자국과 미국의 우정을 강조하고 있었다. 일본이 많은 미국인들에게 어떻게 자리매김하고 100만이 넘는 관광객이 모이는 이 시기를 얼마나 전략적으로 이용하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모든 일을 과거가 아닌 현재로 보는 순간 한인으로서 어쩔 수 없이 마음이 상했다. “이렇게 우정 강조하며 소녀상 철거해달라고 하겠지?” 라고 생각하니 문제가 과거에 있는 것이 아니라 현재에도 있음에 여러 모로 씁쓸해졌다.
사실 벚나무 이야기는 미국의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의 어린 시절 일화에도 나온다. 나무를 도끼로 잘랐다가 솔직하게 자기가 한 일임을 고백하고 용서를 받아 그의 정직함으로 보여주었다는 일화는 꽤나 유명하다. 워싱턴처럼 일본이 솔직하게 자기가 한 일을 고백하고 반성한다면 좋으련만 일본은 아직도 덮으려고만 하고 있다. 사실 워싱턴의 벚나무 일화는 꾸며진 이야기라는 설이 강하다.
벚꽃 행사가 한창인 지금 일본이 역사 앞에서 어떤 엔딩을 노래할지가 궁금해진다. 예쁜 꽃은 그저 예쁜 꽃 그대로 즐길 뿐, 그와 얽힌 사람이나 국가는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엔딩이 왔으면 좋겠다. 그렇지가 못해 4월은 여전히 잔인한 달인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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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지승 매릴랜드대 교육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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