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진희 펜실베니아 주립대 성인교육학 박사과정
“톡톡톡, 냐앙~ 냐앙~” “알았어, 언니 나갈께! 잠깐만 기다려!”
아침 7시 30분이 되면 어김없이 고양이들이 와서 문을 두들기며 나를 깨워준다. 하숙집 고양이들은 내가 일어나면 밥 주는 사람이란 걸 꿰뚫고, 아침마다 방문 앞에서 서성이며 나를 깨우기 시작했다.
고양이와 함께 사는 건 처음인데, 무엇보다 고양이의 언어는 참 신기하다.
처음에는 그 언어를 이해하지 못해서 당황했다. 고양이가 다가 왔다가 다시금 멀리 떠나서 살짝 꼬리를 흔드는 건, 오라는 걸까? 간다는 걸까?
주변을 빙글 돌면서 직접 표현하지 않는 고양이들의 언어는 참 어려웠다. 일명, 개같이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내가 고양이 언어를 접했을 때의 당혹감이란…
게다가 나와 고양이의 언어는 시차가 달랐다. 내가 고양이의 이름을 애타게 부르고 박수를 치며 손을 활짝 펴도, 고양이는 젠체하며 무시하고 스윽 지나갔다.
허나, 내가 무심하게 책을 보고 있으면, 쪼로로 와서 무릎에 올라왔다. 서로가 찾고 좋아하는 타이밍이 달라도 너무 달랐다.
이 고양이의 언어와 자유의지의 표현을 이해하기까지 하 세월이 걸렸다. 아직 다 이해했다고 할 수 없고 매일 배워가고 있지만, 고양이와의 동거를 시작한 덕에 나와는 다른 언어를 갖고 다양한 방식과 시간 차로 표현하는 주변 사람들의 언어를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다.
조용한 소리, 가끔은 답 없이 피하는 소리, 나와는 다른 시간차를 갖고 있는 반응들, 언어로 표현되지 않은 무수한 손짓 발짓들.
먼저 문자나 전화를 하면 항상 반갑게 답해주지만 결코 먼저 말을 걸지 않는 사람들, 혹은, 뜻밖의 문자와 신년 감사 이메일, 모두 다른 표현방식과 시간 차를 두고 있지만 그 나름의 언어와 자유의지로 말을 걸고 있었다.
고양이의 언어를 이해하는 과정에서 평소 해석할 수 없었던 비언어적 표현방식과 시간 차라는 간접적 언어들을 돌아보게 되었다.
발화되지 않은 비언어적 표현들, 다소 간접적이거나 혹은 소극적인 표현에 내가 무감각하게 살았다는 것과, 고양이와 같은 언어를 갖고 있는 사람들의 섬세한 표현에도 좀 더 귀를 기울여 듣고 나와 다르다고 답답해하거나 반응의 시간 차를 오해하지 말고 그 모습 그대로 받아들이는 연습을 하게 되었다.
오늘은 문득 고양이의 눈높이로 세상을 보고 싶어서, 쪼그려 앉아서 식탁을 바라보았다. 위에서 내려다 볼 때 보다, 공간의 간격이 크고 높았다.
어쩌면 고양이는 나름 적극적으로 말했는데 내가 못 알아들어서 그들도 참 답답했겠다 싶다.
고양이를 통해 그 모습 그 대로 받아주는 존재의 언어를 배워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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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희 펜실베니아 주립대 성인교육학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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