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달러트리에서 사온 다육식물이 못 본 사이에 훌쩍 자라있다. 1달러라고 싸다고 덥석 사오긴 했는데 내 손으로 선인장을 키워본 적이 없어 난감했다. 인터넷으로 다육식물 키우는 법을 검색해보아야겠다고 생각만 하다가 까먹고 방치해버렸다.
별로 신경도 못 써줬는데 제 스스로 알아서 잘 자란 녀석을 보니 기특해 한참을 바라보았다. 선인장이라 물을 많이 주지는 않아도 되지만 그래도 주인의 손길을 기다렸을 녀석을 생각하니 뭐 그리 바빠 눈길 한 번 주지 못했나 싶다.
이제 제 화분은 작은 것 같으니 이번 주말에는 큰 화분에 분갈이를 해주어야겠다고 다짐해본다. 이번엔 미루지 말고 다육이가 더 쑥쑥 자랄 수 있는 새집을 마련해줘야겠다.
‘자라다’라는 말에는 확장의 의미가 들어있다. 처음의 화분이 작아진 내 다육이도 이제 확장된 공간이 필요하다. 우리 몸을 봐도 그렇다. 손발톱이 자라고 머리카락이 자라고 키가 자란다는 것은 자란 만큼의 공간이 더 필요함을 의미한다.
잘 자라기 위해서는 돌봄도 필요하다. 무심한 주인을 만난 다육이는 운 좋게 한 달을 제 힘으로 잘 자라주었지만 더 방치했다가는 말라죽었을 것이다. 제 때에 물을 주고 적당한 온도를 맞춰주고 때로는 웃자란 곳을 가지치기를 해줘야 식물도 더 잘 자란다. 이름도 붙여주고 아침저녁으로 들여다보는 사랑이 있으면 더 쑥쑥 큰다.
식물도 그러한데 사람은 더 그렇다. 나도 부모에게는 나 혼자 잘 큰 것이라고 툴툴대지만 결국은 그분들의 돌봄으로 이렇게 장성한 것에는 추호의 의문이 없다.
자라는 것들은 한계가 있다. 제 아무리 생명력이 좋다는 다육이지만 언젠가는 시들시들해지는 날이 올 것이다. 손톱, 발톱은 자라면 주기적으로 잘라주어야 하고 머리카락도 내내 기를 수는 없다. 머리털뿐만 아니라 다른 털도 무한대로 자라지는 않는다. 키도 어느 순간부터는 자라지 않고 정체하다 이내 줄어든다.
한계 없이 자라는 것은 마음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마음은 무한 확장이 가능하다. 마음이 자란다는 것은 누군가를 더 꽉꽉 채워 넣을 자리를 마련하는 일이다. 내가 새로 들인 다육이를 걱정하는 마음과 나를 돌봐주던 부모님을 이제는 내가 돌봐야겠다는 마음도 커지듯 말이다. 그 마음 넣을 자리를 마련하느라 내 마음은 꼬박꼬박 자라고 있다.
나는 이제 자라는 것과는 거리가 먼 나이라고 생각했는데 찬찬히 살펴보니 나는 아직 자라고 있다. 오늘 작은 식물을 생각하는 내 마음이 자랐듯이 말이다. 어제보다 오늘, 내 마음은 한 뼘 더 자랐다. 아직 자랄 수 있는 것이 남았다는 사실이, 억지로 잘라내지 않고도 계속 자랄 자리가 있다는 것이 새삼 고맙다. 가끔은 마음의 가지치기도 필요하겠지만 가지치기는 더 잘 자라게 하기 위함이다.
내일은 내게 어떤 마음이 자랄지 모르겠지만 나는 매일 더 자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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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람 adCREASIANs 어카운트 매니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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