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때마다 ‘오늘은 뭘 먹지?’란 고민을 반복해왔지만 두 딸아이가 대학을 졸업하고 집으로 돌아오고부터는 먼저 퇴근한 사람이 저녁을 준비하는 공동체 생활이 되었다. 예전엔 무조건 내 차지였던 밥상차림을 다 큰 딸들과 나누게 된 것이다.
퇴근길에 작은 딸이 전화를 걸어온다. 집에 도착할 시간을 물어보고 집에 다다를 즈음 꼭 전화하라는 부탁을 하니 저녁식사가 기대된다. 집에 들어서는 순간 뽀글뽀글 끓는 뚝배기의 된장찌개가 식탁으로 옮겨지고 김이 모락모락 나는 밥을 퍼담으며 내게 손만 씻고 오란다. 작은 딸아이가 식구들을 위해 준비한 정갈한 음식을 내놓는데 마치 새댁이 신랑을 위해 차려낸 식탁같아 흐뭇하다.
주말이면 큰 딸과 작은 딸이 차려내는 특별한 식탁에는 근사한 치즈 플레이트가 올라오기도 하고 이탈리아, 중국, 베트남 음식이 올라와 파티를 하는 것처럼 즐겁다. 추수감사절에는 딸아이가 터키를 굽고 사이드요리와 파이까지도 직접 차려낸다. 우리집에서는 남편의 특별식이 자주 차려지고 빵이나 파이가 구워지며 언제나 즐겁게 설거지를 한다. 옛날 같으면 가정주부인 엄마 혼자 짊어질 일거리가 이제는 식구 모두 함께하는 즐거운 놀이가 된 것이다. 주중 업무 스트레스에서 벗어나 마음을 나누는 이 시간은 이제 우리 가족의 주말 일상이 되었다.
큰 딸은 남편과 함께 빵을 굽는 클래스에도 다녀왔다. 클래스에서 찍은 사진을 보니 내가 어릴 적 아빠와 함께 누리지 못했던 시간을 딸은 갖게 된 것 같아 부럽기도 했다. 아들이 부엌에 들어가면 못났다고 하며 싫어하던 때도 있었는데 이제는 아들, 딸 상관없이 모두 요리하라고 권하는 문화가 된 것 같다.
아내 생일날을 맞아 남편이 어설프게 끓여낸 미역국, 마더스데이에 계란후라이 위에 케찹으로 하트를 그려낸 아이들의 솜씨만으로 우리는 감동하고 힘을 받는다. 몸이 아플 때도 엄마가 차려준 밥상 덕분에 일어나곤 했던 그 기억은 세상의 비바람을 견디게 한 힘이 됐다. 따뜻한 밥상은 위로를 주고 기쁨을 주고 추억을 남기며 가족사랑의 통로가 됐다. 그 식탁의 즐거움이 집 밖을 나서는 가족에게 용기를 주었다. 혼밥의 시대가 왔지만 가족들과 식탁을 차리고, 음식을 나누는 것만큼 큰 응원이 어디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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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셸 정 (한미은행 실리콘밸리 지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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