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절인연’이라는 말이 있다. 모든 사물의 현상이 시기가 되어야 일어난다는 말이다.
이 말은 본래 불교용어로서, 모든 사물의 현상은 업과 인과의 법칙에 의해 특정한 시간과 공간의 환경이 맞아 떨어져야 된다는 뜻이다 (출처: 네이버 백과사전). 오늘날 범용적인 표현으로서 ‘시절인연’은 때가 맞고 운이 따르면 모든 일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고, 그렇지 않다면 아무리 노력하고 신경써도 일이 풀리지 않으니 무리하여 집착하고 괴로워 하지 말라는 뜻으로 쓰인다.
대학교 친구들 중에는 십년 가까이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지만 결국 수험생활을 그만둔 이들이 있다. 처음 몇 번은 다음 시험은 꼭 붙을거라 위로와 격려를 해주었지만, 연속된 불합격에 과연 그 친구에게 이 길이 맞는 것인지 의뭉스러운 마음이 들기도 했었다. 반면 훨씬 짧은 수험생활에도 합격을 일궈내는 다른 이들도 있었다. 그래서 이런 큰 시험에는 실력과 노력에 더해, 운이 더해줘야 한다는 것을 느꼈던 것 같다.
‘시절인연’이라는 말은 인간관계에서 많이 인용되기도 한다. 살다보면 다른 무엇도 아닌 사람 때문에 마음이 힘든 시기가 있기 마련이다. 오랜 단짝친구와의 관계가 소원해지기도 하고, 짝사랑하던 사람과 이어지지 못하고 홀로 마음을 정리해야 할 때도 있고, 가족보다 나를 더 잘 이해해주고 위해주는 사람이라 생각했던 연인과 헤어지기도 한다. 한때 온 마음을 바쳐 좋아하고 가깝게 지내던 사람이 어느 순간 남보다 못한 관계가 되어 멀어지는 것 만큼 슬픈 일이 또 있을까.
이렇게 마음처럼 되지 않는 많은 일에 대해 우리는 “아직 때가 아닌가봐. 시절인연 이랬으니 너무 실망하지마 와 같은 말을 하게 된다. 이를 일차원적으로 해석하면 당장의 어려움과 괴로움을 회피하려는 것 같이 들리지만, 사실 이 말은 집착하는 마음은 비우되 노력하던 일에서 완전히 손 놓으라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미 벌어진 일에 집착하지 않음으로써 앞으로 한 발짝 더 나아갈 수 있는 것 - 영어로 하면 “let’s move on”에 가깝겠다.
마음을 비웠더니 더 좋은 결과가 따라오는 경우를 겪어본 적 있을 것이다. 욕심을 버렸더니 시험 성적이 더 잘 나오거나, 집착을 멈추었더니 몇 달 후 헤어졌던 연인이 다시 연락을 해온다거나 하는 일 말이다. 하지만 이런 행운과 같은 일들은, 목표를 달성하려는 혹은 부족했던 부분을 메우려는 지속적인 노력이 수반될 때 자연스레 시절인연이 되어 좋은 결과가 나오는 것 같다. 만약 내가 낙방의 충격에 공부를 게을리했거나, 이별의 슬픔에 폐인처럼 지냈다면 반전이 가능했을까?
여기서 세계관을 확장해보자면 기독교에서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우리 조상님들은 ‘운칠기삼’을, 그리고 요즘 세대는 ‘될놈될 (될 놈은 된다를 줄인 속어)’ 등 조금씩 다른 표현들이지만 비슷한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 거 같다. 결국 최선의 노력을 하되, 이에 대한 응답이 항상 긍정적 일 수는 없고, 내가 어찌할 수 없는 결과에 대해서는 너무 집착하지 말고, 언젠가 올 때를 대비하다보면 자연스레 일이 풀리기도 한다는 것이다. 가끔 마음대로 안 되는 일과 인간관계에 속상할 때면 모든 것은 ‘시절인연’ 임을 떠올려 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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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정 페이스북 프로덕트 매니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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