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의 급격한 인지력 저하와 이를 숨기려던 측근들의 은폐 시도에 대해 칼럼을 쓰기로 결심했을 때 필자는 진보 진영의 독자들로부터 거센 반발이 나올 것으로 예상했다. 해당 칼럼에 달린 댓글에서 보듯 실제로 수 많은 독자들이 날선 반응을 보였다.
바이든은 훌륭한 대통령 아니었나? 그가 전이암 진단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런 글을 꼭 써야했나? 이미 쓰러진 사람을 걷어차는 비열한 행동 아닌가? 도대체 바이든을 물고 늘어지는 이유가 뭔가? 로널드 레이건도 재임 중 노인성 치매에 걸리지 않았나? 백악관의 현 입주자는 우리의 민주적 규범을 해치면서 미치광이처럼 날뛰고 있지 않는가?
정당한 비판을 억누르려는 이런 식의 되치기 공격은 민주당의 미래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종잡을 수 없고, 잔인하며 때론 반헌법적인 트럼프의 정책에도 불구하고 민주당은 공화당에 비해 현저히 낮은 지지율을 기록 중이다. 민주당은 대중의 신뢰부터 다시 쌓아올려야 한다. “트럼프가 나은게 뭐가 있느냐”며 폭주하는 현직 대통령이 그들의 해야 할 일을 대신해주길 기대해선 안된다.
바이든 외에 몇몇 대통령이 그와 유사한 인지력 문제를 갖고 있었다는 주장 역시 사실과 다르다. 1988년 12월에 있었던 레이건의 고별 기자회견을 지켜보라. 30여분간 이어진 회견에서 그는 기자들의 질문에 시종일관 정확하게 반응했다. 반면 2024년 대선후보 TV 토론회 단상에서 바이든은 단 5분을 버티지 못했다. 모두가 알고 있듯 트럼프는 허풍쟁이다. 그는 지난 수 년간 끊임없이 허튼소리를 뿜어냈다. 그러나 이는 이전과 다름없는 흰소리일뿐 인지력 장애의 징조는 아니다.
그렇다 해도 고령으로 접어든 트럼프의 인지 능력을 우려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나이가 들면 인간의 기능은 쇠퇴하기 마련이다. 문제는 인지력을 비롯한 고령자의 인체 기능이 어느 순간에 갑자기 뚝 떨어진다는 점이다. 필자가 대통령의 연령 제한 조항을 헌법에 집어넣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공화당도 트럼프가 심각한 건강 이상을 보일 때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논의해야 한다. 나이든 이웃집 할아버지의 자동차 키를 언제 빼앗아야 할지 훈수를 두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그러나 세대를 불문하고 ‘내 핏줄’에 대해서는 강제적인 개입을 꺼리기 마련이다.
물론 정당은 가족이 아니다. 하지만 구성원이 지니는 충성심의 강도는 대충 비슷하다. 대통령을 둘러싼 측근들의 재정상태는 대통령과의 성공적인 관계에 달려 있다. 보스의 심기를 건드리거나 당 내부의 민망스런 계파 싸움을 촉발시켰다가는 따박따박 나오는 봉급과 작별해야 하는 것은 물론 컨설팅이나 강연 등 퇴직 후의 돈벌이도 힘들어진다. 바이든의 최측근 보좌진도 아마 이런 상황을 놓고 고민했을 것이다.
하지만 어떤 경우에건 당파심과 돈, 혹은 개인에 대한 충성심보다 국가를 우선해야 하는가? 물론이다. 그러나 트럼프가 2020년 대선 결과에 불복했을 때 공화당이 그렇게 행동하지 않았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트럼프의 정치생명이 끝나는 듯 보였던 짧은 순간에 공화당의 일부 유력 인사들은 2021년 1월6일에 발생한 의회 난입사태를 맹렬히 규탄하고 폭동을 사주한 대통령을 강하게 질책하는 등 곧은 목소리를 냈다. 그러나 ‘가부장’을 쉽게 퇴출시킬 수 없다는 사실이 분명해지자 ‘가문’은 그를 중심으로 굳건한 단일대오를 형성했다.
2021년 이후 필자는 이와 관련해 공화당원들과 많은 대화를 나눴다. 이들 중 일부는 선거를 도둑맞았다고 철썩같이 믿고 있었다. 선거를 도둑맞은 게 아니라는 그 어떤 설명도 이들에겐 통하지 않는다. 대선 결과를 뒤바꿀 정도의 부정행위가 자행됐다면 투표 자료에 비정상적인 패턴이 남아 있어야 하는데 젼혀 그렇지 않다며 제아무리 설득력있는 증거를 제시해도 불복론자들은 들은 척도 하지 않는다. 이들은 바이든의 건강 은폐 문제를 묵살하기 위해 요즘 민주당이 구사하는 것과 동일한 전술, 즉 “너희쪽 사람은 문제가 없느냐”는 되치기로 응수한다.
맞다. 우리 측 사람에게도 문제가 더러 있다. 하지만 그는 세상에서 가장 추악한 우리의 정적을 물리칠 유일한 인물이다. 너희 쪽 후보가 승리하게 놓아둔다면 그는 필경 이 나라를 말아먹고 말 것이다. 아마도 평상시에는 당을 분열시키고 정적들에게 승리를 안겨주는 것은 물론 차기 선거까지 내어주게 될지 모를 정치적 추문을 피해 선거 결과를 그대로 수용할지 모른다. 그러나 이 나라의 영혼을 지키기 위한 실존적인 싸움을 벌이고 있는 상황에서는 절대 그럴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민주당으로선 바이든 은폐 의혹에 대한 공화당의 갑작스런 내로남불식 비판을 수용하기 힘들다. 재임중 건강문제가 발생한다면 단연코 대통령직을 사임하겠다는 트럼프의 지난해 약속도 신뢰할 수 없다.
그러나 필자는 무죄추정 원칙의 근거가 되는 ‘의심의 혜택(benefit of doubt)’을 양측 모두에게 적용하고자 한다. 아마도 이번 스캔들을 놓고 침을 튀기며 열변을 토하는 사람들은 노쇠한 늙은이에게 미국의 핵무기를 맡겼다는 사실에 분통이 터졌을지 모른다. 평범한 수준의 지력을 지닌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는 대통령의 치매 징조를 최측근 인사들이 놓쳤다는 주장 억시 믿기 힘들긴 마찬가지일 터이다.
좌파건 우파건 그들이 모시는 세계 최고의 권력자가 정신적인 이상 징후를 보이거나 헌법수호 의지를 보이지 않는다면 즉각 자리에서 물러날 것을 종용하고, 대통령이 끝내 말을 듣지 않을 경우 자신이 감내해야 할 정치적 혹은 개인적 결과에 상관없이 의회에 그의 해임을 권고하는 것이 유일하고도 타당한 수순임을 그들도 영혼 깊숙이 믿고 있을 것이다.
당신도 그래야 한다고 믿는가? 필자 역시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렇다면 마지막으로 꼭 물어야 할 질문이 있다: 좌우를 불문하고 당신은 앞으로 어떤 상황에서건 당신의 믿음에 따라 행동하겠다고 맹세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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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건 매카들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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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고러면 죽는다는것도 알수있는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