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무대 · 선교현장 누비는 심삼종 교수
▶ 장학금 준다는 말에 시작한 색소폰, ‘취미’ 아닌 ‘길’

[심삼종 교수 · 사진]
▶연주자 호흡·감정 그대로 전달⋯ 사람의 마음을 울리는 언어
▶카네기홀 공연 못지않게 아프리카 빈민촌 무대도 큰 감동으로 남아
심삼종 교수는 탄광촌에서 성장, 이제는 세계 무대와 선교현장을 넘나드는 색소폰 연주자이자 예술문화선교사이다.
심 교수는 “뉴욕한국일보 독자들에게 음악으로 새해 인사를 드릴 수 있어 감사하는 마음”이라며 “무대에 오를 때마다 저는 늘 같은 마음으로 숨을 고르며 오늘의 연주 또한 기교를 드러내기보다는, 소리 안에 담긴 시간과 생각, 그리고 제가 지나온 음악의 흔적을 조용히 전하고자 한다”고 말한다.
그는 색소폰이 인간의 숨과 가장 가까운 악기라 믿는다. 그래서 연주하는 순간마다 ‘어떻게 불어야 하는가’보다 ‘어떻게 진실하게 숨 쉬는가’를 먼저 생각하게 된다고.
이어 “색소폰 음악이 독자들 각자의 마음에 잠시 머물며 작은 여운이 되기를 희망한다”고 했다.

[사진1]
■탄광촌에서 시작된 색소폰 선율
탄광촌에서 시작된 한 소년의 색소폰 소리는 이제 전세계에 퍼지는 깊은 울림이 되었다.
심 교수는 강원도 태백산 자락의 작은 탄광촌의 가난한 광부의 아들로 태어나, 중학교 때까지 탄광촌에서 성장했다. 그에게는 음악을 배울 수 있는 선택이 주어지지 않았고 고등학교 진학 역시 역시 ‘예술이 아닌 취업을 위한 선택이었다. 그러나 인천 기계공고 재학 시절의 삶은 언제나 현실적인 방향으로 흘러간 반면, 색소폰은 그렇게 아주 현실적인 이유로 새로운 인생속으로 들어왔다.
방과 후 관악부에 들어가면 장학금이 지급된다는 말에 신청한 밴드부. 그곳에서 처음으로 만난 낯선 울림은 심 교수의 인생을 바꿔 놓았다.
그때만 해도 음악가가 되고 싶다는 게 생각조차 할 수 없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매일 악기를 연습한 이유는 설명할 수 없지만, 색소폰 소리는 그를 계속 불러 세웠다. 이어 그 부름에 성실히 응답한 시간 끝에 그는 군악대를 선택했으며 그때부터 색소폰은 취미가 아니라 ‘길’이 된 것이다.
그로인해 심삼종 교수는 군악대를 거쳐 미국 존스 홉킨스 대학교 피바디 음악원에서 클래식 색소폰을 전공하고, 클래식 색소폰 전공 1기로 한양대학교 음대 관현악과에 진학한 후 12년간 학생들을 지도하면서 교수로서 음악의 길을 함께 걸어왔다.
그는 “색소폰은 연주자의 호흡과 감정이 그대로 전달되는 악기”라고 말한다. 클래식부터 재즈, 대중음악에 이르기까지 장르를 넘나들 수 있는 색소폰의 가능성은 그의 음악 세계를 확장시켜주었다.

[사진2]
■카네기홀 공연 못지 않게 감동으로 기억되는 아프리카 빈민촌 무대
연주자로서 가장 기억에 남는 무대는 뉴욕 카네기홀과 아프리카 빈민촌의 작은 선교 무대다. 세계 최고 수준의 공연장에서 느낀 음악적 완성도 못지 않게 아무것도 없던 아이들이 음악에 맞춰 춤추던 그 순간은 규모를 넘어선 동일한 감동으로 남아 있다.
■슬럼프와 함께 허리부상으로 찾아온 위기 극복
하지만 음악인생이 늘 순탄했던 것은 아니었다.
군악대와 유학 시절 반복된 허리 부상은 큰 위기 였지만, 심 교수는 신앙과 기도를 통해 그 기간을 견뎌냈다. 슬럼프조차 더 깊은 연습과 성찰의 시간으로 삼으며 자신을 단련해 왔다.
■한국 연주자들의 강점 및 한국 색소폰 음악성의 방향성
심 교수는 한국 색소폰 연주자들의 강점으로 탄탄한 기본기와 성실함을 꼽는다.
빠른 학습 능력과 장르간 유연성. 해외 연주자들의 자유로운 해석과 결합된다면 국제 무대에서 경쟁력이 크다고 보고 있다. 그리고 동시에 한국 색소폰 음악의 미래는 장르간 경계를 허무는 크로스오버에 있다고 강조한다.
클래식,재즈, CCM, 영화음악,대중가요까지 자유롭게 넘나드는 색소폰이야말로 현대 음악 환경에 가장 적합한 악기라는 것이다.
■후배 연주자들에게 전하는 조언 및 교육자로서의 보람
교육자로서 그는 제자들이 무대에서 자신만의 음악을 즐기듯 펼쳐낼 때 가장 큰 보람을 느낀다.
후배 연주자들에게는 “최선을 다해 연습하되, 자신이 가야 할 음악적 방향성을 정확히 알고 달려가라”고 조언한다.
짧은 역사 속에서도 빠르게 변화해 온 한국 색소폰 문화 그리고 심삼종 교수의 음악 인생은 그 변화 흐름 속에서, 색소폰이 단순한 악기를 넘어 사람의 마음을 울리는 언어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딸 심희서와 유럽 동남아 찬양 콘서트 투어. 아버지와 딸, 두 개의 숨결이 하나의 찬양이 되어 유럽과 동남아의 무대 위에 울려 퍼집니다. 색소폰 선율로 전하는 믿음과 소망의 콘서트 투어.
‘정서적 친숙함’ 기반으로 ‘전문성·다양성’ 있게 확장
■ 한국 색소폰 연주 문화의 변화
심삼종 교수는 한국 색소폰 연주 문화에 대해 “비교적 짧은 역사로 매우 빠르게 독특한 변화를 겪어오면서 한국전쟁 이후 군악대와 미군 부대를 통해 재즈와 스윙 음악이 유입되었고, 1990년대 들어 각 음악대학에서 클래식 색소폰 전공자를 선발해 실용음악 중심이었던 교육 구조가 점차 다층화되기 시작, 2000년대에는 중장년층을 중심으로 색소폰이 대중화가 되면서 취미 문화가 폭발적으로 성장했다”고 설명한다.
심 교수에 따르면 동호회와 지역 문화센터를 통해 트로트, 가요, 영화음악 중심의 레퍼토리가 정착되자 색소폰은 전문 연주자의 악기라기 보다는 대중의 삶의 여유와 감성을 표현하는 악기로 인식이 되기 시작해 2010년대 이후 해외 유학파 연주자들이 대거 귀국하기에 이른다.
이에 클래식과 재즈 분야의 전문성이 빠르게 강화, 취미 영역과 전문 영역은 점차적으로 뚜렷하게 분화되는 동시에 유튜브, 인스타그램, 틱톡, 기타 등으로 SNS 미디어 시대를 맞이하면서 솔로 연주자의 브랜드화가 가속화 되었으며, 장르의 경계는 점점 흐려지고 있다.
그는 “오늘날 젊은 연주자들은 연주뿐만 아니라 영상 제작과 미디어 활용을 통해 색소폰을 현대적인 표현 도구로 재정의하고 있지만 역사는 짧아도 변화의 속도와 흡수력이 매우 빠른 시장에서, 한국 색소폰 연주 문화는 ’정서적 친숙함‘을 기반으로 ‘전문성과 다양성’ 있게 확장을 넓혀가는 중이라고 말했다.
즉, 정리하면 군악대. 미군부대 중심의 재즈 유입, 클래식 전공 도입, 중장년 취미 문화 확산에 이어, 최근에는 SNS를 통한 장르 융합과 연주자 브랜드화로 빠르게 변화 중이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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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영/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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