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의 조롱은 지독하고 집요하다. 오스카 21회 노미네이트에 빛나는 메릴 스트리프를 “과대평가 배우”라 헐뜯더니, 자기가 국방장관으로 임명한 제임스 매티스를 “과대평가 장군”이라고 혹평했다(매티스는 그래서 스스로를 ‘장군계의 메릴 스트리프’로 소개한다). 조 바이든 초상화 자리에 자동 서명기 사진을 걸고, 낸시 펠로시에겐 ‘사악한 여자’ 꼬리표를 달았다. 요즘은 캘리포니아 지사 개빈 뉴섬을 뉴스컴(인간쓰레기란 뜻의 scum을 합성)이라고 부르는 데 재미를 붙였다.
■ 그의 조롱이 악질인 것은 약자·피해자에게 더 신랄하기 때문이다. 피살된 롭 라이너 감독의 사인을 ‘트럼프 발작 증후군’이라고 비하했고, 그린란드에 군대를 보낸 덴마크를 “개썰매 두 대뿐”이라고 놀렸다. 사실 이 개썰매 발언에는 개발이 덜 된 그린란드에 대한 비하 의미가 한껏 담겼다. 스콧 베선트의 말(“유럽은 약함, 미국은 강함”)에서 보듯, 트럼프와 추종자들에게 약함이란 놀림과 조롱의 대상일 뿐이다. 약자 배려와 존중 따위는 없다.
■ 그러나 그린란드 개썰매는 트럼프의 조롱거리가 될 만큼 하찮은 문화유산이 아니다. 북극 지역에서 개썰매를 교통수단으로 활용한 건 최소 9,000년 전이니, 말의 가축화(5,500년 전)보다 더 빠르다. 특히 그린란드견은 남극점 정복 경쟁 당시 로알 아문센의 비밀병기였다. 아문센은 그린란드에서 개 100마리를 사 남극 원정대 썰매를 끌게 했다. 가장 오래 개썰매를 쓴 지역의 검증된 견종을 고른 아문센의 선택은 옳았다. 로버트 스콧은 추위에 강한 야쿠트 말을 가져갔으나 그린란드견에 비할 바 아니었다.
■ 그린란드의 자부심을 조롱하고, 그린란드인의 마음을 돈으로 사겠다는 트럼프의 모욕 때문에 평화롭던 그린란드가 분노로 불타고 있다. 백날 트럼프 비판해봐야 변하지도 않는데 어쩌겠냐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겠지만, 비판하지 않으면 약자를 업신여기는 행패가 금방 국제질서 뉴노멀이 되고 만다. 하지 말라고 정색해야 한다. 다시는 그린란드와 개썰매를 무시하지 말라고. 그렇지 않으면 다음 조롱은 우리 차례가 될 수도 있다.
<이영창 / 한국일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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