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한 부모와 가난했던 학창시절을 떠올리면서도 유지태(25)의 표정은 밝았다.
그에 따르면 초등학교 4학년 때 사업이 부도난 아버지는 지방 떠돌이 생활을 시작했다고 한다. 결국 그의 부모는 유지태가 중 1때 이혼을 했고 그때부터 급격히 가세가 기울었다고. 모자가 지하 단칸방으로 이사를 한 것도 그 즈음이었다.
“할아버지께서 신민당 시절 국회의원을 지내셨을 만큼 꼬맹이 때는 부족할 것 없이 자랐어요. 그런데 할아버지 돌아가시면서부터 궁핍해지기 시작했죠.”
유명메이커 신발은 물론이고 용돈도 그와는 상관없는 일이었다. 유지태의 어머니 김봉희씨는 최근까지 일산 백병원 간호사로 재직했는데 지금은 그만 두고 아들 뒷바라지에 전념하며 사회복지 시설을 구상중이라고.
아버지 사업이 망한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유지태는 신문을 배달했다. 4년 동안 강남구 삼성동 일대에 조선일보와 한국일보를 돌린 것. 당시 오토바이가 귀하던 때라 기아 변속도 안 되는 자전거를 타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새벽바람을 갈랐다. 전단지라도 있는 날은 손 베는 줄 모르고 끼워 넣느라 고생을 해야 했다.
고진감래. 오늘날 유지태의 상황은 달라졌다. 작년 단칸방에서 벗어나 일산의 4층짜리 다세대주택을 마련했고 어머니께 SM5 자동차도 사드렸다. 한풀이하듯 돈을 쓸 법도 한데 그의 지갑은 여전히 가난하다. 지금도 신용카드한 장 없이 다니는 그를 두고 주변 사람들은 “지태가 너무 일찍 철들었다”고 말한다. 그는 헤어지기 직전 인상적인 말을 했다.
“이런 얘기 괜히 했나봐요. 가난을 부끄럽게 생각하진 않지만 동정 받고 싶지는 않거든요.”
하지만 그를 동정할 사람은 별로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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