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근(66). 김근순(62. 리버데일 거주)씨 부부는 대학 때부터 지금까지 평생을 한국어와 씨름하며 사는 커플이다. 이씨는 일찍이 한국에서 연세대학과 대학원에서 국어국문과, 김씨는 같은 대학에서 도서관학과를 들어가고부터 지금까지 한국어교육에 혼신을 다하며 살고 있다.
이를 위해서 이씨는 대학 졸업 후 연세대어학당 전임강사 시절 같은 알타이어족인 몽고어, 퉁구스어, 일본어 중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한국어에 대한 연구를 하기 위해 터키까지 가서 73년에, 부인 김씨는 그 2년 뒤 각각 박사학위까지 받았다.
그만큼 이들 부부는 국어에 관한 한 운명적인 삶을 살고 있다. 그 결과 이들이 뉴욕에 살아온 28년 동안 이씨와 김씨가 교장으로 있는 한국학교를 통해 수많은 한인 2세들이 한국어를 배워 나갔다. 이씨가 처음 시작한 어린이 예술제, 동화 구연대회, 교사연수회가 2세 한국어 교육발전에 커다란 기여를 하고 있다.
이 부부 중 먼저 이씨가 터키 유학을 하게된 것은 당시 국어학의 원조인 최현배 박사, 박창해 교수, 한글학회 이사장이던 허웅 교수의 권유때문이었다. 학위를 취득하고 나서 모국에 돌아와 국어 연구 및 발전에 기여하기 위해서였다. 당시 한국에는 알타이어를 하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을 때였다.
다른 학생들이 모두 미국 유학길에 오를 때 이씨는 터키 정부로부터 받은 국비 장학금으로 앙카라 대학교로 유학을 떠났던 것이다. 이전에 이씨는 한국에서 대학원을 마치고 연세대 어학당에서 강사로 있을 때 이미 거기서 지금의 반려자 김근순(현 경제인 협회 산하 브로드웨이 한국학교교장)씨를 만난다.
김씨도 마찬가지로 졸업 후 어학당에 전임강사로 막 들어와 있었다. 그러나 이씨는 터키 유학길에 오를 때 김씨를 그냥 두고 갈 수 없어 떠나기 전 그의 부모를 만나 인사만 나눈다.
그리고는 터키로 간 후 줄곧 이씨와 서신을 통해 만남을 지속했다. 결국 2년 후 김씨도 미국의 인디애나 대학에 있는 지도교수의 초청을 마다하고 이씨 뒤를 이어 터키 정부 장학금을 받아 유학을 하게 된다. 도착한지 일주일만에 이들은 터키 한국대사의 주례로 관저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이들은 ‘한국어’로 맺어진 짝으로 각자의 위치에서 서로가 서로를 돕고 의지하며 한국어 교육에 생애를 바쳐오고 있다.
한국에 돌아가려던 이씨가 뜻하지 않게 미국에 살게 된 것은 예상 밖의 일이었다. 그의 얘기를 들어보면 뉴욕에 이씨가 사는 것은 미리 예정된 것이었다고나 할까? 우선 한국행을 목표로 터키에서 취득한 박사학위 과정을 들어보면 아무리 이씨가 대학에서 좋은 성적으로 졸업을 했더라도 터키어로 박사가 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박사과정에 들어가기 전 다시 4년간 문학만 빼놓고 어학과정은 다 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다른 나라 언어로 박사학위를 취득해야 하는 지난한 공부에 매달렸다. 결국 노력 끝에 8년만인 73년 학위를 따내는 결실을 맺게 된다.
당시 그는 언어를 익히기 위해 터키인의 집에서 6년동안 같이 기거하며 하루는 터키 음식, 하루는 한국 음식을 먹으며 생활했다. 덕분에 터키어를 자연스럽게 익힐 수 있었다고 한다. 이렇게 이씨가 학위를 따게 되면 터키 학과를 신설키로 추진하고 있는 한국 외국어대학에 가서 일하기로 했다. 그런데 부인 김근순씨가 또 2년후면 박사학위를 받을 수 있어 연기하
다 결국 계획이 어긋나면서 차질을 빚게 됐다.
이씨는 한국행을 연기할 때도 2년동안 학과 신설에 필요한 모든 서적들을 터키의 각 연구소, 대학교 등지에서 3,000권을 구해 송료만 받고 한국에 보냈다고 한다. 75년에 부인도 학위를 취득하고 이들 부부는 한국에 가기 전 처제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뉴욕에 잠시 들리게 되었다. 그런데 이것이 뉴욕에 정착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뉴욕에서 대학 당시 지도교수를 만났다. 교수에게서 한국의 정세를 들어보니 5.16혁명으로 사정이 많이 달라져 우선 뉴욕에서 연구원생활을 하다 차후를 바라보기로 마음먹었다. 여러 대학에 신청서를 내놓고 그동안 영어공부도 하고 연구도 하면서 체류하다 귀국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나 이 계획이 무너지면서 결국 뉴요커가 되어 어느덧 이들 부부는 뉴욕생활 28년이란 세월을 맞고 있다.
당시 다니려고 했던 대학 연구소의 봉급은 너무 적어 두 딸과 함께 4식구가 살아가기 어려웠다. 그래서 우선 컬럼비아대학에 가서 영어공부나 하다 한국행을 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본국의 상황이 계속 좋지 않아 차라리 미국에서 2세를 위한 뿌리교육을 하며 살겠다고 마음 먹은 것이 뉴욕 정착의 계기가 되었다.
그렇게 시작한 것이 브루클린 한인교회 부설 한국학교 초대교장이다. 그는 교장으로 3년간 있으면서 부인 김씨와 함께 주말이면 한글지도, 주중
에는 동서의 도움으로 79년도 용커스에 있는 한 구두방의 코너에 차린 운동화가게를 6년간 운영하며 한국어 교육을 계속했다.
이때 이씨는 2세들을 위한 ‘동화구연대회’를 시작해 성공적인 열매를 맺었다. 이 행사는 지금까지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지속되고 있다. 이씨는 또 뉴욕 새교회 부설 새한국학교 교장으로 3년간 있다 88년 뉴욕한인회 문학과 교육담당 분과위원장으로 ‘어린이 예술제’를 성공리에 개최했다. 이 행사는 해마다 수백명의 한국학교 어린이들이 참가할 만큼 활성화되었다.
이씨는 한국어 보급에 이것으로 만족하지 않았다. 재미한인학교 동북부지역협의회 제2대 회장이 되면서 국어 전공자가 아니더라도 교사가 될 수 있게 89년도 ‘교사연수회’를 실시, 아주 좋은 반응을 얻었다고 한다. 이 행사도 지금까지 계속 이어져 오면서 2세 한국어 교육에 올바른 방향을 제시해 주고 있다.
이씨는 또한 성인 및 외국인을 위한 한국어 교육원을 95년 맨하탄에 차린다. 바로 지난 6월 창립된 한국문화연구재단의 전신이다. 이 교육원을 8년 반 운영하며 이씨는 많은 성인들과 외국인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쳤다. 그는 이곳에서 학생들을 지도하며 보람도 많이 느꼈고 모르던 사실도 많이 알게 됐다고 한다. 교육원 개설 동기는 한인 2세들이 성장하면 결국 한국인끼리 아니면 동양계 어린이들과만 어울리게 되면서 정체성 문제가 대두되는데 이들에게 뿌리교육의 근원인 모국어를 가르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그런데 갈수록 한인 2세 보다 오히려 외국인들의 수가 더 많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친구나 애인, 약혼자 등이 한인이어서 좋아하는 사람의 나라 언어를 배우고자 하기 때문이다. 그 중에는 40대의 뉴욕주 판사도 들어있다고 한다. 이씨는 일본어, 중국어보다 이들이 그렇게 한국어를 배우려고 하는 것을 보면 얼마나 그들이 한국인에 반했으면 그렇게까지 하겠느냐며 처음엔 친구로 인해, 나중에는 문화에 반해서 한국어를 배우려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것을 보면 한인사회 미래가 어둡지 않다고 말한다.
그만큼 한인들이 이들을 매혹시키는 것은 한반도가 지형적으로 ‘기;가 굉장히 강하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는 것. 한국인이 그 정도로 똑똑하기 때문에 잘만 교육시킨다면 어느 민족 못지 않게 모두 다 훌륭하게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이씨는 확신한다.
또한 그런 점을 부모로부터 교육받은 아이들이라면 충분히 외국인들이 반할 것이다. 그러므로 교육은 대단히 중요해 2세들의 한글교육에 제대로 신경 쓰면 그들이 주류사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우리는 앞으로 성공할 수 있는 민족임을 강하게 느낀다는 것이 이씨의 지론이다.
그래서 이씨는 그런 생각을 하다보면 이것은 누군가가 힘들어도 해야 될 일이라며 한국학을 자신이 한 만큼 아무 불평 말고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혼자라면 아마도 힘들어 중도에 포기했을지 모르지만 다행히 집사람도 같은 길을 걸어 내가 지치면 집사람이, 집사람이 지치면 내가 돕다 보니 지금까지 이 일을 그대로 지속해올 수 있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덧붙인다. 한국어에 대한 이들 부부의 끈질긴 집념, 그리고 고집은 앞으로도 계속 한인 2세 교육 발전에 커다란 밑거름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여주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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