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범<문학박사>
1980년대 초, 전두환 정권시절, 대학가에 떠돌던 우스개가 있었다.
코미디언 이주일과 전두환의 공통점은? 1) 대머리다. 2) 못생겼다. 3) 텔레비전에 자주 나온다. 4) 국민들을 웃긴다. 그럼 두 사람의 차이점은? 답) 이주일은 웃기는 줄 알고 웃기는데, 전두환은 웃기는 줄 모르고 웃긴다.
한국에는 20여년 전의 그 우스개 같은 상황이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전재산이 29만원뿐이라고 하여 지나가던 강아지도 웃을 실소를 자아내더니, 백억원도 넘는 은닉자금을 물려받은 그 아들은 검찰에 출두하면서 일부러 고물차를 타고 가, 대를 이어 웃지 못할 개그를 연출했다.
이런 개그판을 벌이는 것이 어디 그들 부자뿐인가. 한국 정치판은 개그판이 아니라, 개판이라는 말로도 직성이 풀리지 않는 참으로 웃지 못할 웃기는 판을 계속 벌이고 있다. 차떼기 불법자금수수, 방탄 국회에 이어, 시급한 현안은 제쳐둔 채 구속 수사중인 의원의 석방결의안을 통과시키고는 마치 개선장군이라도 된 듯한 석방된 의원을 둘러싸고 함께 희희낙낙하는 모습이라니.
공자(孔子)는 제자가 정치인들에 대해서 묻자, 좁은 소견머리를 가진 자들이라 계산에 넣을 것도 없다고 했다. 오늘날 한국의 정치인들도 거론할 가치도 없는 자들이 대다수인지 모른다. 그러나, 그런 정치인들의 정치가 국민들의 일상생활을 지배하고 구속하고 있는 데 어찌해야할 것인가?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은 스승 소크라테스가 정치인들의 모함으로 독배를 마시고 죽게되는 현실을 목도하고는 정치에 환멸을 느껴, 한동안 정치에 대한 언급을 일절 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플라톤이 갑자기 현실 정치를 강도 높게 비판하자, 그의 제자가 물었다.
선생님, 정치에 관여하지 않으신다더니 어쩐 일이십니까?
플라톤이 대답했다.
나보다 멍청한 자들의 지배를 받는다는 것을 도저히 더 이상 참을 수 없다.
개그판은 정치판 만이 아니다. 정치판의 폭로전을 연일 경쟁적으로 중계하며 씹어대는 일부 언론들의 작태는 또 얼마나 한심한 개그인가. 과거 독재정권 때는, 용비어천가를 불러대며, 정권에 아부하던 일부 언론(인)들은 정치인들의 폭로전을 확대 재생산하며, 싸잡아 비판을 해대고, 심지어 해묵은 색깔 논쟁마저도 다시 들먹인다.
언론의 건전한 비판과 제대로 된 여론 형성 기능은 현대 민주정치의 성패를 좌우한다. 그러나, 지금의 한국 언론의 보도 행태는 정책과 대안부재에 대한 심층 비판이 아니다. 노무현 정권에 대한 일부언론인들의 비판도 건전한 비판보다 기득권 집단들의 오만함과 감정적 뒤틀림이 주조를 이룬다. 막말로 상업고등학교 밖에 나오지 못한 촌놈 출신이 무슨 대통령이냐하는 감정이 깊게 깔려 있다. 소위 명문대 출신들과 중상류층 출신의 기득권자들은 그 출신 성분 때문에 대통령이 어떻게 하더라도 그냥 싫은 것이다. 문제는 많은 국민들도 은연중에 그러한 기득권집단이 주도하는 여론에 세뇌되어 끌려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쯤에서 돌아보자. 과연 한국의 언론인들은 플라톤인가, 소크라테스에게 독배를 마시게 판결을 하도록 여론을 조장한 기득권자들인가? 그런 언론이 형성해내는 여론에 끌려가는 대다수 국민들은 또 어떠한가? 어쩌면 한국 사회, 한국 민주정치의 웃지 못할 개그판의 한심함과 암울함의 정체가 바로 여기에 숨어 있는 지도 모른다.
국회의원이 나라를 해치는 ‘국해의원(國害議員)’이라고 까지 비판하면서도, 많은 한국 유권자들은 지역감정과 학연 등 온갖 패거리주의를 극복하지 못하고, 선거 때면 그런 사람들을 대표로 선출한다. 정치인들의 짓거리 보다 더한 개그는 바로 국민들의 이런 투표 행태이다. 철인정치를 주장했던 플라톤은 민주정치를 어리석은 사람들이 지배하는 중우정치(衆愚政治)보다 못한 것이라고 혹평했다. 꼭 우리 국민들의 투표 행태를 두고 한 말 같다. 제발 이번 총선에서는 플라톤의 주장이 틀린 것이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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