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비드 멕켄 교수
하버드대 데이비드 맥캔 교수
시로 노래로 불려지며 한(국)인들 가슴속에서 영영 지지 않고 있는 ‘진달래꽃’ 등 숱한 시를 남기고 30대 초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난 김소월(본명 김정식, 1902∼1934), 그는 과연 민족시인이요 저항시인인가, 진정 한국 근현대 시단의 가장 탁월한 시인인가.
한국에서 불과 몇년전만 하더라도 ‘김소월=민족시인=최고시인’ ‘진달래꽃=민족시=최고시’ 등식은 마치 옳다 그르다 논증조차 불필요한 정언명제처럼 받아들여졌다. 아니, 최소한 그렇게 받아들이도록 주입됐다. 그러나 요즘은 좀 다르다. 80년대를 거치면서 김소월과 김소월의 시를 새로운 눈으로 보는 기운이 일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김소월은 저항시인도 민족시인도 아닌 그저 개인의 감정을 갈고닦은 시어로 잘 버무린 뛰어난 시인일 뿐이며 ‘진달래꽃=조국’따위 판에 박힌 등식에 대해서도 개인적 체험이나 시인 특유의 상상력에서 나온 ‘이별의 형상화’에 지나지 않는다는 매몰찬(?) 평가도 언죽번죽 볼륨을 높여가고 있다. 심지어 진달래꽃의 7·5조는 겨레의 가락이 아니라 왜색풍이라는 지적도 있다.
그러나 외국인 한국문학 전문가의 눈에 비친 김소월은 여전히 ‘위대한 김소월’이었다. 22일 오후 5시부터 1시간30분가량 UC버클리 인근 뱅크로프트호텔 그레이트홀서 열린 문학세미나에서 김소월을 주제로 특강을 한 데이비드 맥캔(사진) 하버드대 교수는 김소월의 시는 대표작 진달래꽃 뿐만 아니라 그의 시 전체를 연구할 가치가 충분하다며 소월은 위대한 시인이라고 치켜세웠다.
나 보기가 역겨워…로 시작되는 진달래꽃 번역본을 놓고 한글과 영어로 번갈아 읽어가며 주석을 달아가며 김소월 특강에 나선 맥캔 교수는 소월을 한마디로 저항시인 혹은 민족시인으로 규정하지는 않았으나 (진달래꽃)이 이별의 슬픔을 서정적으로 묘사하고, 1919년 3·1운동 실패에 뒤이은 한국민의 슬픔과 실망을 한민족 특유의 ‘한’이라는 감정에 실어 잘 표현하고 있으며, 일본의 퇴출을 바라는 ‘주문’과 같은 시라고 지적했다.
맥캔 교수는 또 1922년 ‘개벽’지에 진달래꽃을 처음 발표한 김소월이 1925년 이를 다시 발표하면서 조사 ‘-에’ 등 8음절을 생략해 더욱 간결하게 다듬고 ‘아 오 이 아 여 여 워’(첫행) 등 모음의 반복과 절묘한 배치, 토속어 발굴과 사용 등 시어의 조탁에 각별한 주의를 기울여 명시를 만들어냈다고 평가했다.
그는 또 김소월이 19세기 프랑스 등 서구시를 소개하고 그 시풍을 이어받은 스승(1893∼?)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덧붙였다.
<정태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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