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안마다 개혁·反개혁 잣대… 野와 선명성 경쟁에만 몰두
최근 들어 여권의 ‘개혁 강박증’이 두드러지고 있다. 거의 모든 주요 현안을 ‘개혁이냐 아니냐’를 기준으로 설명하려 하고, 야당과는 본질과 거리가 먼 개혁 선명성 경쟁을 벌이고 있다. 이에 따라 “쓸데 없는 개혁 논쟁에 빠져 정책이 표류한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문제가 이에 관한 대표적 사례다. 노무현 대통령이 9일 분양원가 공개 반대 입장을 밝히면서 말한 논거 중 하나가 “분양원가 공개는 개혁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는 것이었다.
이에 한나라당이 즉각 “개혁의 후퇴”라고 반발하고 여론이 들끓자, 열린우리당 신기남 의장과 천정배 원내대표 등 지도부는 “원가공개를 하면 반드시 개혁적이고 원가공개를 하지 않고 원가연동제를 하면 비개혁적인 것은 아니다”는 논리로 반박했다.
두 제도의 차이점과 파급효과 등에 대한 본질적 설명은 뒷전인채 오로지 “개혁 후퇴가 아니다”는 주장에만 급급한 것이다. 그러다 개혁 후퇴라는 논란이 끊이지 않자, 급기야 두 사람은 16, 17일 차례로 원가공개 필요성을 다시 강조하기에 이르렀다.
좀처럼 타협점을 찾지 못하고 있는 17대 국회 원구성 협상도 마찬가지다. 신기남 의장은 16일 확대간부회의에서 예결위 상임위화를 적극 주장하는 한나라당을 공격하며 “억지를 쓰면 안 된다. 예결위 상임위화를 하면 개혁이고, 다른 식으로 하면 개혁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대중에게 개혁후퇴로 비치는 것을 두려워하는 여당의 개혁 콤플렉스를 또 한번 드러낸 셈이다.
‘고위공직자 주식 백지신탁제’ 도입 여부를 놓고는 한나라당과 선명성 경쟁에 열을 올리고 있다. 우리당은 당초 17대 국회의원에 대한 백지신탁제 적용에 난색을 표했었다. 그러나 한나라당이 “17대 의원에게도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하자 김현미 대변인은 12일 “공직자들의 적용 대상을 (정부가 발표한 1급 아래로도) 넓혀야 한다”고 한술 더 떴다.
결국 우리당은 17일 당정 협의에서 17대 의원까지 일괄 적용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소급입법 여부와 관련한 위헌논란에 대해선 “일단 입법하고 수정을 하면서 제기되는 문제를 고쳐나갈 수 있다”고 비켜갔다. 실현 가능성에 대한 세밀한 논의보다는 개혁주도권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욕심만 앞선 결과다.
이에 대해 한 재선의원은 “개혁에 대한 강박의식이나 조급증이 있는 것은 사실”이라며 “중요한 것은 어떤 것이 실질적으로 국민들에게 도움 될 수 있는냐는 구체적 정책의 내용”이라고 일갈했다. 참여연대 이태호 정책실장은 “개혁은 물론 중요하지만 본질적인 문제는 개혁이냐 아니냐의 논쟁이 아니라 사안에 대한 당의 일관성과 자기목소리 내기”라고 지적했다.
정녹용 기자 ltree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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