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폭행당한 노숙자 5일만에 뇌출혈로 사망…검·경, 가해동료 진술만 믿고 폭행치사 기소
법원 사인 근거 희박 무죄선고 졸속수사 제동
가깝게 지내던 노숙자를 때려 숨지게 한 혐의로 구속 기소된 노숙자에 대해 법원이 “피고인의 폭행을 사망의 직접적인 원인으로 보기 어렵다”며 무죄를 선고한 사실이 5일 뒤늦게 밝혀져 수사기관의 무리한 수사관행이 도마 위에 오르게 됐다.
노숙자 A(38)씨는 1월19일 낮12시께 서울 서대문구 D무료급식소에서 함께 노숙을 해오던 B(38)씨와 말다툼 끝에 가슴 부위를 밀어 2층에서 계단 아래쪽으로 굴러 떨어지게 했다.
머리에 부상을 입고 피를 흘린 B씨는 곧 인근 K병원으로 옮겨져 정밀 검사를 받았으나 두개골 골절이나 내부출혈 등은 발견되지 않았다. 뒷머리에 2㎝가량 찢어진 상처 외에는 다른 이상 징후가 없어 B씨는 가벼운 치료만 받은 뒤 바로 퇴원했다.
하지만 사건 5일 만인 1월24일 오후6시45분께 B씨는 서울 용산구의 한 여인숙에서 싸늘한 시체로 발견됐다. 이 소식을 접한 A씨는 경찰서로 달려가 “나 때문에 죽은 것 같다”고 털어놓은 뒤 5일전 폭행사건에 대해 진술했다.
이후 경찰은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부검결과 B씨의 사인이 두부손상으로 인한 뇌출혈로 나오자 곧바로 A씨를 폭행치사 혐의로 구속했다. 폭행과 사망간에 5일의 공백이 있었는데도 수사기관은 그 사이 어떤 일이 발생했는지 여부에 대한 정밀한 조사없이 A씨의 자백성 진술 만을 믿고 용의자로 단정해 사건을 종결한 셈이다.
하지만 법원이 이런 경찰과 검찰의 무성의한 수사에 제동을 걸었다. 서울서부지법 형사 11부 이원일 부장판사는 지난달 30일 폭행치사 혐의로 구속기소된 A씨에 대해 폭행치사 부분에 대해서는 무죄를 선고하고 가벼운 폭행 부분만을 인정해 300만원의 벌금형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최초 상처 치료당시 각종 첨단기기를 통한 진단에서 두개골 골절이나 출혈이 발견되지 않았는데도 부검 결과 뇌출혈로 나왔다면 피해자가 폭행사건 이후 또 다른 충격으로 사망에 이르는 상처를 입었을 가능성이 있다”며 “이를 감안하면 피고인의 폭행으로 피해자가 사망했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또 “피고인의 자백은 친구를 잃은 슬픔과 폭행에 대한 자책, 수사기관이 제공한 피해자 사망에 대한 단편적인 정보 등을 통한 잘못된 추측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법원 관계자는 “K병원이 ‘B씨의 상처는 단순히 찢어진 것이기에 뇌출혈 발생 가능성이 극히 희박하다’는 내용의 진료자료와 국과수 부검에서 폭행 당시는 나타나지 않았던 멍 자국과 두개골 골절이 새롭게 발견된 부분 등을 감안하면 B씨가 폭행사건 이후 다른 곳에서 술에 취해 넘어졌거나 제3자에게 폭행을 당하는 등의 2차 충격이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며 “그러나 경찰과 검찰 등은 용의자가 후에 법률적 시비를 일으킬 가능성이 적은 노숙자인데다 본인이 범인이라고 진술한 점만을 중시해 다른 의문점 등을 무시한 채 기소한 것으로 여겨진다”고 지적했다.
안형영 기자 prometheu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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