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박병근 재판 과정을 지켜보면서 나는 어느 쪽 사람인가 생각 하게 되었다.
법정에는 판사가 있고 그 옆에 서기가 기록 하고. 조금 밑의 옆 좌석에는 증인석이 있고,
증인석 옆으로 배심원이 의젓하게 근엄한 표정으로 앉아 있다.
더 내려오면 검사와 변호사가 앞에 서 있다. 죄인인 피고는 변호사 옆에 앉아 있다. 칸
막이가 있고, 일반 시민이 앉아 있는 것이 재판소의 통례이다.
우리의 삶이 이런 것이 아닌가 생각 하였다. 우리는 끊임없이 도전 받으며 송사를 받으며, 경쟁하며 살아간다. 오늘의 삶이 도전이고 경쟁이고, 투쟁인 것을 살아가면서 터득하고 , 살아 있는 것이 축복이다. 새벽기도에 오늘 하루 삶을 허락 하신 주님께 감사부터 드린다.
교회에서나 사회에서나 판사 같은 사람이 있다. 또한 끊임없이 검사로서 논고하는 분이 있다.
그리고 구경꾼이 있다. 거기서 느긋이 배심원 노릇하는 사람도 있다. 사회나 우리 삶 역시 변호하는 사람은 적은 것이다
이 시대는 자기 PR시대가 되어서 자기를 상품화 하지만, 그 사람이 잘못 되었을 때 얼마나 돌아보며 진정한 변호인이 되어 주어 아픔을 공감하는가 하는 말이다.
이 시대는 단절의 시대, 인터넷 시대다. 이 시대에 사는 우리들 다른 사람의 아픔을 알려고도 않고, 알아도 동정을 줄 여유가 없다 .
죄인으로 앉아 있는 저 작은 체구의 젊은이를 누가 저 자리에 세우고 추방이라는 죄목을 씌우고 추방하려고 하는가. 그 사람은 선고 받은 형을 살았는데도, 자기가 살고 싶은 곳에서 살지 못하도록 추방을 시킬 권한이 있는가. 누가 그런 권리가 있는가 물어 보고 싶다.
우리가 다 판사가 되어 있었다. 그 사람이 너무 무서워 범죄 할 적에 ,그 사람이 전쟁
공포에 떨고 있을 때, 살려 달라고 아우성을 칠 때. 누가 그 사람을 쳐다보았는가.
우리는 단지 네가 이래서 잘못이고, 네가 이런 것은 하지 말아야 하고. 법을 어겼으니 벌을 받아야 한다고, 당연하게 판시하고 외면하였다.
그는 19세에 이라크 전쟁 최전방에서 임무를 수행하면서 수없이 죽어 가는 동료들 몸통이 떨어지고 ,머리만 남고, 팔만 남은, 동료들의 처절한 모습을 보면서 왜 안 미칠 것인가 .
이 사람이 집에 돌아와 전쟁 상처를 잊지 못하여 잠도 못자고, 밤 낮 소리 지르다가, 집을 뛰쳐나가 범죄를 하였는데, 법은 그를 병원에 데려 가기 전에 감옥에 집어넣었다. 형을 마치고나면 추방 한다는 것이다.
재판소에서 내내 아픈 마음으로 박병근을 쳐다보면서, 저 젊은이 자기가 살 장소도 선택할 수 없는 중죄인이가 하는 생각이 오니 가슴이 저리다 .
포수의 과녁에 들어 온, 선한 사슴 한 마리가 이슬을 머금고 두려움에 떨고 있다고 생각이 들었다.
주님이라면 이 상황을 어떻게 말할까 죄 없는 자가먼저 돌로 쳐라 하실 것인가.
한해를 보내면서 얼마나 이웃을 돌아보았나. 얼마나 남의 아픔을 같이 아파하여 보았나.
얼마나 사랑을 베풀었나. 하는 자성이 왔다.
우리는 구경꾼으로 안타까운 마음으로 박병근 재판을 바라보며 이미 포수의 과녁에 들어 있는 저 어린 사슴에게 포수가 제발 총을 당기지 말 것을 빌고 또 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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