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한해동안 기자는 세 번이나 크레딧카드를 새로 발급받아야 하는 번거로움을 겪었다.
누군가 크레딧카드 번호를 도용해 9월께 200여달러의 물건을 구입했고 10월께 300여달러의 물건을 구입했다. 매달 날아오는 스테이트먼트를 꼼꼼히 살펴보지 않았더라면 이번 달은 왜 이렇게 페이먼트가 많을까 하고 그냥 낼 뻔했다.
최근에는 아내가 지갑을 잃어버려 크레딧카드 분실신고를 또 하면서 한해에 세 번이나 크레딧 카드를 새로 발급받는 진기록(?)을 세웠다. 아니나 다를까 지갑을 훔친 범인은 그 다음날 아침 크레딧카드로 개스를 사용하고 데빗카드에서도 돈을 꺼낸 것이 확인됐다.
신분도용 사실을 크레딧카드 발행 은행의 해당부서에 알리고 이를 시정하는데 걸린 시간과 에너지를 생각하면 아직도 울화통이 치민다. 도용당한 액수만 보상해 줄 뿐이지 정신적인 피해와 크레딧카드 내역을 바로 잡기 위해 쓴 시간과 정력의 낭비는 고스란히 나의 몫이었기 때문이다.
크레딧카드 발행 은행의 해당부서에서 조사를 해봤지만 왜, 어떻게 크레딧카드 번호가 흘러나갔는지는 정확한 경위를 모른다. 그래서 더욱 찜찜한 생각을 지울 길이 없다. 원인을 알아야 재발을 방지할 수 있는데 어찌된 영문인지 그 경위를 알 수가 없으니 말이다.
10년 전에도 누군가 내 주유 크레딧카드 번호를 훔쳐 터무니없는 액수의 주유를 한 것을 발견해 이를 바로 잡고 보상을 받는데 한달 이상 걸린 적이 있다. 또 기자와 미국 이름이 똑같은 한인이 집 페이먼트를 제대로 내지 않아 크레딧이 손상을 받을 위기에 처한 적도 있었다. 남들은 평생 살면서 1~2번 겪어도 족할 일을 수차례 겪다보니 신분도용에 관한 노이로제가 생겼다.
자동차 매입 시 신용조회를 위해 소셜 번호를 요구할 때도 주기 싫을 정도다.
내가 조심을 하더라도 누군가 악한 맘을 먹고 훔친 소셜 번호를 사고판다면 큰 손실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인들의 신분도용 피해도 만만찮다. 한해 피해자가 미인구의 4%에 해당하는 890만명으로 한해 총 피해액은 566억달러, 평균 피해액은 6,383달러로 집계됐다. 수년 전에 샌드라 블록이 주연한 영화 ‘더 넷’(The Net)이 생각난다. 자신의 신분을 도용당한 주인공이 범인으로부터 쫓기는 것이 주 내용인데 이제는 이것이 굉장히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신분도용 피해를 당하고 나서 기자는 ▲크레딧카드 영수증을 일일이 노트에 모아두는 습관이 생겼다. 명세서와 대조해 보기 위해서다 ▲ATM 머신을 쓸 때도 누가 가까이 있나 확인한다. 카메라폰으로 카드 또는 비밀번호 입력을 녹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래된 은행 계좌나 크레딧카드 서류도 분쇄기로 찢어버린다. 쓰레기통에 무심코 버린 서류를 누군가가 훔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주위에는 신분도용을 당하는 사람도 있고 용케 이를 피하는 사람도 있다. 개인이 조심을 해도 운이 없어서 당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조심하지 않아도 거꾸로 운이 좋아서 괜찮은 사람이 있다.
신분도용 범죄가 하도 기승을 부리다 보니 카드 소지자의 자동차 모델과 색깔, 3~5년 전에 거주했던 도시, 최근 48시간 사용한 카드 내역까지 요구하는 미국 은행들도 생겼다. 신분도용 범죄는 중범으로 처리되며 3년형이나 1만달러의 벌금형에 처해질 수도 있지만 이 정도로 신분도용 범죄가 사라지기는 힘들다고 본다.
한인들도 새해에는 신분도용 범죄에 적극 대처하지 않으면 더 큰 피해가 발생할 수도 있을 것으로 우려된다.
peterpak@koreatimes.com
박흥률 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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