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해년, 중국에서는 황금돼지해라고 유난을 떨고 있고 일본에서는 ‘이노시시(멧돼지)해라고 하고 있다고 한다. 재물이 강조되는 돼지해를 맞아 돼지에 관한 이야기를 모아보았다. <편집자주>
돼지는 여느 짐승과 달리 코가 뭉뚝하다. 아득한 옛날 돼지가 먹는데 욕심이 너무 많아서 하늘의 옥황상제가 주둥이를 잘라 버렸기 때문이라고 한다. 돼지는 또 생식기가 삐뚤삐뚤한 모양이 가관이다.
옥황상제가 여러 생식기를 만들어서 짐승들을 모아 놓고 하나씩 달아 주는데, 먹는데 만 정신을 팔던 돼지가 가장 늦게 오는 바람에 마지막 남은 찌끄러기 생식기를 달게 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고사상(告祀床)마다 빠지지 않고 오르는 돼지머리를 보면 온 몸을 희생하여 죽어서도 하늘을 향해 방긋 웃으며 자기를 길러준 사람들의 복을 비는 듯한 천연스런 모습은 뭉뚝한들창코가 묘한 조화를 이루어 자못 풍자적이고, 해학적이며, 상서스런 기운이 절로 감돈다.
또 신에게 소원을 빌며 돼지머리 앞에 절을 한 다음 주둥이에 지폐를 물려주는 고사행위(사진 위)는 ‘부’의 상징을 의미한다.
고사를 지내고 나서 뒤풀이로 여럿이 그 자리에 함께 어울려 서서 귀때기며 볼때기·코때기·혓바닥 따위를 썽둥썽둥 잘라 텁터름한 막걸리 사발을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새우젓에 찍어 먹는 돼지 머리고기와 돼지머리 편육(片肉)은 한바탕 웃음과 더불어 신과 인간, 이웃과 이웃이 서로의 정(情)을 나누는 신명 나는 잔치음식이다.
「진서(晋書)」의 숙신씨(肅愼氏)편을 보면 옛 고구려의 영토로서 만주지방에 살던 읍루(婁)족에 관하여 이런 기록이 나온다.
그들은 돼지고기를 즐겨 먹고, 그 가죽으로는 옷을 만들어 입으며, 겨울철에는 찬 바람과 추위를 막으려고 돼지기름을 두텁게 몸에 바른다. 또 사람이 죽으면 돼지를 잡아서 관 위에 올려 놓아 망자의 양식으로 바치는 습속이 있다.
이로 미루어 우리 민족이 고사상에 돼지머리를 얹는 습속은 여기서 온 듯하다.
어쨌거나 희생의 제물이 되어 고사상에 올려졌어도 만면에 웃음을 머금고 있는 듯한 돼지머리를 보면 오랜 세월 끈질긴 삶을 일구어 오며 이 땅을 지켜낸 민족의 한(恨)이 떠오르고, 이러한 한이 민중의 슬기와 지혜에 걸려지고 승화되면서 익살스런 풍자와 해학으로 웃음 속에 녹아 들어 새로운 힘으로 솟구치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이다.
우리 민족은 초현대식 건물을 가공하거나, 심지어 첨단 과학기술의 결정체인 「무궁화 호」위성을 하늘에 쏘아 올리는 자리에서도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에는 돼지머리를 앞에 놓고 고사를 지낸다.
지금은 이것이 미신이라기 보다는 신명(神明)의 원점에 귀의하고 싶은 인간본연의 욕구가 민족 고유의 전통과 접목된 보다 잘 되기를 바라는 기원(祈願)정신으로 보아 진다.
더구나 요즘은 돼지머리 고사가 경건한 제사의식이라기 보다는 흥겨운 잔치마당으로 치러지면서 최첨단 과학과 미신과의 기묘한 만남이 계속되고 있는데에는 ‘돼지머리’라는 우리말에서 알게 모르게 연상되는 여러 가지 의미가 복합적으로 상승작용을 하여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도 전혀 간과할 수 없을 것이다.
축산문화연구가 전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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