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김계관 부상의 방미 이후 북-미간 관계 정상화에 대한 기대감이 일고 있다. 지난해 10월 북한의 핵실험으로 잔뜩 고조되었던 긴장을 생각하면 격세지감을 느낄 정도이다.
2.13 합의 후속조치의 하나인 북-미 관계 정상화를 논의하러 온 김 부상은 공식 협상 이외에도 미국 내 한반도 전문가들과 회동하며 활발히 의견을 나누었고, 미국은 예상을 넘어선 경호와 의전으로 예우를 갖춰줬다.
무엇보다도 미국이 북한을 보는 인식이 변했다는 점이 북-미 관계 정상화에 희망을 갖게 한다. 지난 1994년 제네바합의 때도 관계 정상화가 포함되긴 했지만 북한의 붕괴를 기정사실화했던 미국은 이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고 북한이 가장 실망했던 부분이기도 했다.
반면 미국은 더 이상 북한 붕괴라는 전제를 갖고 있지 않다. 북한을 ‘악의 축’이나 ‘폭정의 전초기지’ 등으로 규정하기도 했지만 결국은 북한의 존재를 인정했다는 점에서 1994년과 큰 차이가 있다. 북한도 이 점을 잘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이번 방미를 통해 미국과 북한 모두 양국간 관계 정상화가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에 있어 매우 중요함을 인식하고 있고, 이를 달성하려는 의지도 강함을 보여주었다.
물론 아직도 넘어야 할 크고 작은 산이 많다.
우선 북한과 미국 간에 신뢰를 쌓는 일이다. 지난 반세기 동안 누적되어 온 양국간 불신의 벽을 허무는 것은 간단한 일이 아니다. 2.13합의가 하나씩 이행되면서 점진적으로 양국간에 신뢰가 생겨야 한다. 김 부상이 비공개 간담회에서 가장 강조한 것 중 하나도 북-미간 신뢰였다.
북한의 비핵화 과정도 간단치가 않다. 북한은 핵 프로그램과 핵무기를 분리하여 접근하고 있으며, 2·13합의는 핵시설·프로그램에 국한되어 있다. 영변 핵시설의 경우도 가동 불가능한 상황까지 가는 데는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릴 것이고 고농축 우라늄 프로그램에 대한 의혹도 여전히 남아 있다. 핵무기의 완전 제거는 북-미 관계 정상화 등이 이루어진 후에나 가능할 것이다.
경수로 문제도 현재는 중요 논의대상이 아니지만 북한으로선 쉽게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핵 프로그램을 포기하는 대가로 경수로 지원을 요구할 것이다. 한국 정부의 ‘중대한 에너지 제안’은 북한 입장에서 보면 단기적으론 도움이 되지만 궁극적인 해결책은 아닐 것이다.
미국 여론의 향배도 변수가 될 수 있다. ‘네오콘’으로 대변되는 강경파들의 목소리가 줄기는 했지만 비핵화를 북-미 관계 정상화의 전제조건으로 하자는 여론도 만만치 않다. 관계 정상화만이 비핵화를 이루는 최상의 방법이라는 북한의 주장과 현저한 차이가 있다.
일본은 미국이 북한을 테러국에서 제외할 경우 납치문제 해결이 더욱 어려워질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지난주 베트남에서 열렸던 북-일관계 정상화 실무회담은 제대로 논의도 해보지 못한 채 마쳐 앞으로 험난한 과정을 예고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미 관계 정상화는 한반도 비핵화는 물론 동북아 평화체제 확립에 중요한 이정표가 될 것이며, 지금은 모멘텀을 이어갈 때이다. 이제 크리스토퍼 힐 차관보가 답방하는 형식으로 평양에서 다시 만나야 한다.
미국과 북한 모두는 빌 클린턴 행정부 말기 모멘텀을 살리지 못한 채 여러 해를 반목과 갈등 속에 지내야 했던 경험을 되새겨야 할 것이다.
북-미관계 정상화는 한반도에서 냉전체제의 해체를 의미하며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는데 필수적이다. 또한 남북관계를 한 차원 높이 끌어올리는 역할도 할 것이다.
북미관계가 정상화되면 코리안 아메리칸에게는 이산가족 방문 등 현실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는 부분이 많다. 북미간의 교류강화로 미국 내 북한 이미지가 제고된다면 이 또한 코리안 아메리칸 커뮤니티에도 득이 될 것이다.
한반도에 봄이 찾아와 미국에 사는 우리에게도 해빙의 기쁨을 줄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신기욱> 스탠포드대 쇼렌스타인 아태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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