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딩크 매직 어디로 히딩크 선수. 그를 기억하는 축구팬은 드물다. 기억 이전에 선수 시절 그는 세계축구팬들의 기억에 자리잡을 기회조차 거의 없었다. 감독으로 유명해진 다음에야 기록을 뒤져보고 주변사람 증언을 취합해서 겨우 알아낸 것이 60년대 중반부터 70년대 중반까지 주로 네덜란드 프로리그에서 뛰었고 근성있는 미드필더였다는 정도다. 하긴 그 시절 네덜란드축구는 요한 크루이프와 요한 네스켄스 등 기라성 같은 수퍼스타들이 즐비한 토탈사커의 발원지였다.
히딩크 감독. 그를 모르는 축구팬은 드물다. 1998프랑스월드컵에서 네덜란드를 4강에 올려놓으며 네덜란드축구의 부활을 고시했고 2002한일월드컵에서는 오매불망 본선1승, 기왕이면 본선16강에 목을 매던 한국을 대번에 4강에 올려놓아 세계적 화제가 됐다. 특정감독이 다른 나라를 이끌고 월드컵에서 연속 4강에 진출한 것은 1930년 월드컵 창설 이래 히딩크 감독이 유일하다.
그때부터 고정수식어가 된 히딩크 매직은 2006독일월드컵에서도 찬연했다. 한국을 따돌리고 1974년 서독월드컵에 출전한 이래 30여년동안 세계축구계에서 거의 잊혀진 나라나 다름없었던 호주가 독일월드컵에 출전한 것만 해도 이미 히딩크 매직의 영험은 입증됐다. 그런데 히딩크의 호주는 32년만의 본선복귀를 16강진출로 장식했다. 조별리그 관문통과도 극적이었다. 일본에 0대1로 끌려가다 공격수를 총투입하는 모험 끝에 막판 8, 9분동안 3골을 쏟아부으며 3대1로 역전승, 사커루(호주축구의 별칭)의 화려한 나들이를 지휘했다.
달리는 말은 뒤를 돌아보지 않는다던가. 몇년만 더, 몇 년만 더를 외치는 태극팬들의 성화를 뒤로 한 채 미련없이 한국을 떠났듯이 그는 역시 같은 구호를 외치는 사커루팬들의 애원을 뿌리치고 호주를 떠났다. 새로 지휘봉을 잡은 팀은, 1980년대 후반 이후 도무지 깨어날 줄 모르는 잠자는 거인 러시아. 체력과 조직력을 바탕으로 팀을 재정비한 그는, 02월드컵을 앞두고 태극호를 이끌면서 그랬듯이, 유로2008 지역예선에서도 롤러코스터 성적으로 러시아팬들을 울리고 웃겼다. 이스라엘과의 경기에서 지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호언하다 1대2로 졌는가 하면 수퍼파워 잉글랜드에 2대1로 이겨 본선진출권을 따냈다(잉글랜드는 이 패배로 생채기를 입은 뒤 최종전에서 크로아티아에 2대3으로 패하는 바람에 이번 대회에 출전하지 못했다).
이제 히딩크호 러시아앞 장애물은 네덜란드다. 히딩크의 조국이다. 이번 대회에서 가장 무시한 화력(3전승, 9득점 1실점)을 자랑한 팀이다. 게다가 니스텔루이, 스나이더 등 네덜란드 주력부대는 3차전을 쉬어 5, 6일 휴식 끝에 싱싱한 몸으로 러시아전에 임하고, 러시아 선수들은 이틀만에 필드에 오른다. 그러나 히딩크는 네덜란드의 선수들을 속속들이 안다. 거기서 승리비책을 가다듬고 있다. 02월드컵 때 한국이 이탈리아와 연장사투 뒤 이틀만에 경기장에 나서 나흘 쉰 스페인을 격파했었다. 또 기록이나 관록은 대개는 정직하지만 종종 거짓말을 한다. 이름하여 이변이다.
02월드컵에서 첫선을 보인 아프리카의 세네갈은 디펜딩 챔피언 프랑스에 1대0 승리를 거두며 8강까지 치달았다. 프랑스는, 지네딘 지단이 부상으로 주로 벤치에 있기는 했지만, 세네갈에 일격을 맞은 뒤 내내 뒤뚱거리다 1라운드에 탈락했다. 당시 세네갈 감독은 프랑스 출신 브루노 메추였다. 히딩크의 매직이, 다름아닌 조국 네덜란드를 상대로 또하나의 이변승부 걸작선을 만들어낼까. 러시아와 네덜란드 8강전의 별미는 있다. 62세 노년신사 히딩크 감독은 무명선수 출신이고, 20년 가까운 후배 마르콜 반 바스텐 감독은 크루이프의 대를 잇는 스타플레이어 출신이다.
<정태수 기자> tsjeong@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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