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바이 스트라우스가 발명한 것으로 알려진 청색 진 바지(blue denim jeans)는 코카콜라와 더불어 미국의 상징물이다. 스트라우스는 골드 러시로 일확천금의 꿈을 지닌 채광자들이 캘리포니아로 몰려들자 그들에게 천막 천과 마차의 포장 천을 팔려고 샌프란시스코로 이사를 했다. 그러다가 사금을 캐내기 위해 진흙바닥에 무릎을 박고 기어 다녀야하던 채광자들이 보통 바지로는 당할 재간이 없음에 착안한 스트라우스는 천막 천으로 바지를 만들어 대성공을 거둔다.
그런데 문제는 힘든 일을 하는 중노동자들만이 아니라 현재에는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진 바지 착용자들이 너무 많다는 사실이다. 아빠, 엄마, 아들 셋이서 길을 걷는다든지, 또 공항에서 기다리는 줄에 서 있는 경우 셋 다 진 바지 차림인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더 웃기는 사실인즉, 새 진 바지도 미리 여러 번 세탁을 거친 듯이 색깔이 좀 바래 보이도록 생산 과정에서 산성처리를 거친다는 점이다.
최근 워싱턴 포스트 지의 보수 논객 조지 윌스의 ‘악마 데님’(Demon Denim)이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읽은 내용이 재미있다. 윌스 자신도 대니엘 액스트(Daniel Akst)란 작가가 월스트리트 저널에 쓴 글에서 칼럼 아이디어를 얻은 모양이다. 윌스는 액스트가 그 글에서 대통령 자유훈장을 받아야 마땅한 공헌을 했다고 칭찬한다.
내가 아직 읽지는 못했지만 액스트는 진 바지의 만연된 사용이 자유의 남용으로서 미국 정신상태의 심각한 질환의 증상이기 때문에 미국인들이 참회해야 된다고 역설한 것 같다. 중산층이 진 바지를 선호하는 것은 허머를 몰고 무공해식품 가게를 가는 것처럼 부조리라는 것이다.
윌스는 한 걸음 더 나가 진 바지가 소아병적 사회현상으로 어른과 아이들의 구분을 없애버렸으며 민주주의의 평준화 사상의 사제 복장이 되어 누구도 제일 옷을 꾀죄죄하게 입는 사람보다 더 나은 옷을 입어서는 안 된다는 사고방식에 이르게 했노라고 정죄한다. 또 장유유서 구별이 없는 복장은 또한 취미와 문화에 있어서도 어린아이들과 어린아이 같은 어른들이 비슷하게 되도록 만들어 예를 들면 배트맨(Batman)이나 인디애나 존스 같은 영화들이 유행한다는 것이다.
연령에 따른 적절한 복장의 필요성에 대한 부정은 사회인식에 있어서도 영향을 끼쳐 무엇이 올바르고 무엇이 그르다는 기준이 존재한다는 것 자체를 부정하게 만들고, 좋은 취미와 나쁜 취미가 있다는 주장을 엘리트적인 사고방식이라고 배척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그 두 사람의 혜안과 예지력에 감복하면서 한마디 더 하자면 진 바지의 혼용으로 대표되는 미국 문화는 성도덕의 문란과 타락으로까지 이어졌다는 생각이 든다.
어린아이들과 어른들 간의 구별이 없으니까 어린아이들도 어른들의 행위를 일찍부터 답습하여 어떤 판사의 말대로 “어린아이들이 어린아이를 낳는” 세상이 되지 않았을까? 또 남녀의 복장이 진 바지처럼 같아지니까 남성과 여성의 차이점이 모호하게 되어 동성애의 편만에 일조하게 되지는 않았나?
뛰어난 두 논객의 아이디어를 접하고 나서 나 자신의 지혜 부족이 자탄스러워진다. 통찰력의 부족도 그렇거니와 문필력의 모자람도 자괴스럽게 느껴진다.
더군다나 뛰어난 문필가들의 글을 읽고 나면 더욱 자격지심이 드는 것을 어쩔 수 없다. 최근 ‘밥’이라는 김용미 씨의 글을 읽고서 더욱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 어릴 적의 밥은 곧 질서였다. 부엌의 솥전에서 풀 때부터 할아버지의 밥이 먼저였고, 할머니, 아버지 순으로 퍼내려갔던 밥은 하얀 쌀도 그 순서대로 섞여 있었다.” 우리들의 어릴 적 시절을 얼마나 정확하게 묘사하고 있는가. “가마솥이 밥 눈물을 흘릴 즈음 어머니는 굳은 떡이나 계란찜 같은 걸 솥 가장자리로 밀어 넣으셨다”는 문장도 멋있는 사실 묘사라 생각된다.
나 같이 재주 없는 사람이 아까운 지면을 축내는 일을 접을 때가 되지 않았나 라는 생각조차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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