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9월11일 사변 이래 2003년까지 미국의 정보기관이나 군 관계자들이 테러 용의자들을 고문했던 것이 법치국가(Rule of law nation)로서의 미국의 이상과 본질을 근본적으로 훼손시킨 것인지 아니면 테러의 재발을 어떻게든 막아야 한다는 극한상황 아래서 불가피한 조처로 더 많은 희생자들이 생기는 것을 방지했는지가 첨예한 쟁점으로 대두되고 있다.
피의자의 얼굴에 수건을 씌우고 물을 코 위에 계속 부어(waterboarding) 부어 숨 막혀 죽을 것 같은 상황에 이르게 하는 것이 고문이냐고 물으면 대부분 사람들은 그렇다고 대답할 것이다.
그러나 부시 대통령의 법무부 고위관리들은 워터보딩은 고문이 아니라는 법률 소견서를 백악관에 제출하여 CIA 직원들이나 군조사관들이 알카에다 핵심 분자들을 심문할 때 그 방법을 사용하는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 그 소견서는 고문을 정당화하기 위해 심한 언어의 유희를 구사했다는 느낌을 준다.
‘증진된 심문’(enhanced interrogation)은 고문이 아니라는 결론부터가 그렇다. 피의자에게 입히는 고통이 “죽음, (신체)기관의 정지나 신체기능의 심각한 손상”을 초래하지 않으면 증진된 심문 방법이지 고문이 아니라는 주장이다. 알카에다의 간부로 알려진 한 피의자는 83번, 또 하나는 183회나 워터보딩을 당했다니까 당한 사람으로서는 필설로 표현하기 어려운 고통이었을 것이다.
중세기의 가톨릭교회에서 소위 이단자들을 잡아들여 종교재판을 했을 시절부터 있어온 그 같은 물고문이 고문이 아니라는 주장이 유럽의 자유국가들 모두로부터 비웃음을 사고 있는 점도 이해될 만하다.
반면 체니 전 부통령을 위시한 보수계는 그 같은 ‘증진된 심문’ 또는 고문이 있었기 때문에 피의자들이 미국의 서부에 전개되었을 대규모 테러계획을 발설해서 수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구하게 된 것이라고 반론을 편다.
체니는 한걸음 더 나가 자기가 부통령 재직 당시에 ‘증진된 심문 방법’으로 입수한 정보로 테러계획을 무산시키는데 성공했다는 CIA 메모를 본 적이 있으니까 오바마 대통령이 명령해서 공개된 법무성의 소견서만이 아니라 그와 같은 메모도 공개해야 된다고 CIA에 요구를 하고 나섰다.
다수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서는 테러 용의자들을 고문을 해서라도 낱낱이 알고 있는 것을 발설케 해야 되는가? 아니면 테러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법치주의와 인권존중주의 가치를 계속 추구하는 것이 국익인가? 오바마 정부의 테러 메모 공개가 앞으로 체포될 테러 분자들을 미리 ‘교육’시키는 역효과를 낼 것인가? 정말로 쉬운 결론이 나지 않는 난제다.
오바마가 테러 메모 발표는 허용하면서도 그 메모 입안자들이나 그 메모에 의해 행동한 CIA 직원들을 하나도 문책하지 않겠다고 말한 것을 두고도 펠로시 하원의장 등이 부당하다고 나섰다. 그러자 오바마는 정책입안자들에게는 책임을 물을지도 모른다는 여운을 남긴 발언도 해서 또 논란거리다.
당시의 CIA 국장, 또는 메모 작성자들까지 사법처리의 대상이 되는 경우 부시가 “내 대통령 임기 중에 있은 일이니까 나를 기소하라”고 나온다면 어쩔 셈이냐는 가상의 시나리오도 있다. 그래서 남아연방의 초대 흑인 대통령인 넬슨 만델라가 진실화해위원단을 구성하여 백인 정권들의 죄악사를 다 드러내면서도 처벌을 가하지 않아 흑인들의 보복을 막은 성공적인 역사를 본받아 미국도 고문에 대한 진실위원회를 만들어 조사만 하고 처벌은 하지 않아야 할 것이라는 주장도 대두하고 있지만 오바마가 아직까지는 반대한다고 보도되고 있다.
사족을 달자면 ‘고문’ 메모의 주요 저자가 캘리포니아 버클리 법대의 존 유라는 한국인 2세 교수다. 예일 법대 출신으로 토마스 클라렌스 대법원 판사의 법률보좌관을 거쳐 상원 법사위의 법률 간사를 지냈던 수재로 보수계의 총아였기에 아마도 공화당 행정부가 들어서면 대법원 아니면 연방공소법원 판사 자리에 임명 대상이 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가 법무성 부차관보 재직시 그 문제의 메모를 썼기 때문에 그 같은 가능성이 전혀 없어졌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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