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에 봄이 있으면 가을이 있고 여름이 지나면 겨울이 오듯이 인생이란 젊음이 있으면 늙음이 있는 것이다. 사람에게 젊은 종자 늙은 종자는 따로 없더라.
우리 세대는 일제시대에 태어나서 썩은 콩 깻묵을 먹으면서 일본이 우리나라인 줄 알고 자랐고 국민학교를 다니면서 조선 말했다고 양 팔 들고 복도에서 한 시간씩 벌을 서기도 했다.
해방이 되어서는 ㄱㄴㄷㄹ ㅏㅑㅓㅕ를 한글이라고 다시 배워야 했고, 신문지에 삼천리 금수강산 붓글씨를 썼다. 해방의 기쁨도 잠시, 해방된 우리나라가 남북으로 두 동강이 나더니 6.25 전쟁이 터져 형제끼리 민족끼리 죽이고 죽는 비극을 겪으며 피난살이를 했다.
4.19 학생의거로 자유당 독재정권이 무너지고, 이어서 5.16 군사혁명으로 군사정권시대가 되어 공포와 어려운 국난을 겪으면서도 국민이 하나 되어 새마을운동과 조국근대화에 노력했고, 허리띠 졸라매고 한강의 기적을 이룩하며 오늘의 대한민국을 건설했다.
부모 덕에 평화시대를 살면서 온실에서 자란 지금의 젊은이들은 부모와 선조들의 고통과 민족의 수난을 너무도 알지 못하는구나.
오늘의 한국발전과 평화시대는 거저 얻어진 것이 아니라 젊은 너희들이 수구골통이라 부르는 아버지 어머니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피와 땀과 눈물이 있었기에 대한민국이 존재하고 너희들이 이렇게 왕자처럼 공주처럼 사치스럽게 살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조국을 떠난 우리 이민자들은 자식을 품에 안고 잘 살아 보겠다고 꿈을 향해 낯선 이국 땅에서 디아스포라로 살아왔다.
이제 자식들 다 키워 출가 시키고 뒷방 늙은이 되었어도 과학문명시대에 그 놈에 글씨기계 컴퓨터를 배우려니, 자식들 곰상스럽게 가르쳐 주지 않고 섭섭하게 핀잔만 주는구나. 내 짧은 인생길에 일본 글, 한글, 영어를 배우며 힘들게 살았는데 이제는 기계 글씨 컴퓨터까지 배워야 하는 얄궂은 팔자로구나. 나는 60년 전에 어머니 뱃속에서 나왔고 너는 내 뱃속에서 30년 전에 나온 것이 다를 뿐 인데, 왜 이렇게 내 인생행로는 파란곡절이 많으냐.
스산한 가을 바람에 낙엽이 딩굴고 까닭 없이 서글퍼서 술잔을 기울이며 추억을 더듬어 옛날 얘기 웃음소리 높아지는데 ‘그 6.25 이야기 피난 이야기 백 번도 더 들었어요’ 자식들 핀잔에 술잔 슬며시 내려놓고 뒷방으로 밀려나는 씁쓸한 뒷모습 감추는구나. 넌 늙어봤냐 난 젊어봤다.
아파트 열쇠 손에 들고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빙빙 돌며 열쇠열쇠 하는구나, 안경 머리 위에 걸고 안경안경 찾는구나. 늙은 엄마 건망증에 한심스럽다고 웃어대는구나, 이제는 내 정신이 아니고 내 눈이 아니고 내 손이 아니로구나. 이래서 “늙으면 죽어야 한다?”고 했던가… 늙은이 종자는 따로 있는 줄 알았는데 나도 세월 따라 영락없이 늙은이 종자 되었구나.
한국에 정치인이라는 어느 젊은 것이 “늙은이는 투표도 하지 말고 집구석에 있으라”고 했다니 동방예의지국 한국의 경노사상(敬老思想)이 놀랄 驚(경)字 驚老時代로 타락 했구나. 넌 늙어봤냐 난 젊어봤다.
세월 속에 살다 보니 머리 위의 지붕은 날아가고 은빛머리 허약한데 얼굴에 인생 계급장은 늘어나고 허리 굽은 늙은이 지팡이가 효자로구나. 그래도 몸은 늙었지만 마음이라도 낡지 말아야지 다짐하며 시니어센터 찾아와 컴퓨터 앞에 앉아 마우스를 이리저리 굴리면서 오늘도 단풍인생으로 사는구나.
하나님 오늘도 건강 주셔서 감사합니다.
윤학재
워싱턴 문인회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