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 집으로 가는 길은 두 개의 물밑 잠행(潛行)이 필수인데 오고 가는 시간대나 교통상황에 따라 어느 쪽을 택하든 우리 부부의 마음이지만 보통은 북행 95번 국도를 통해 맥헨리 터널 통과를 즐긴다.
볼티모어 항의 경치, 낮에 진입로를 오르면서 우측에 불티모어 선(Baltimore Sun)지의 낡은 사옥이 바로 눈 아래 있고 먼발치로 보이는 키 브릿지(Key Bridge)위를 덮은 보호물의 형상이 커다란 누에가 기어가는 것 같다. 운이 좋을 때면 볼티모어 항에서 출발하는 낭만 실은 크루즈 라인(Cruise line)이 정박해 있는 것을 볼 때도 있으나 일반적으로 항상 외국에서 들어 온 선박들의 하역하는 모습을 보면 생동감이 넘친다.
오늘도 북행 95번 국도를 달리는데 메이저 딜레이(Major Delay)가 있다는 전광판을 읽고 895번 도로를 택했다. 볼티모어 항구에서 첫 번째로 만들어진 물밑 잠행로(潛行路), 즉 볼티모어 하버 터널은 수심이 깊고 오래되어 약간 어둡고 좁고 길다. 이 길은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지, 통행차량 특히 대형 트럭의 주행이 많지 않아서 유유자적 양쪽 경관을 즐기면서 가는데 오늘의 기온 또한 춥지도 덥지도 않아서 가을소묘가 절실한 날이다.
샛강물의 흐름이 고요한데 상당한 길이와 폭넓은 갈대꽃이 길 양쪽으로 만발직전의 무거운 머리로 키 작은 수수같이 하늘하늘 웃고 있다.
좀 더 천천히 달렸으면 아련한 향수를 더 느끼며 즐길 터인데, 운전대를 잡은 남편은 갈대꽃 아랑곳없이 곡선 길을 잘도 달린다.
갈대밭을 지나니 오랫동안 움직이지 않은 듯 한 화차와 구 철로(鐵路)가 널려 있어 꽤나 지저분하다.
존스 홉킨스 대학 캠퍼스가 있는 진입로 표시판을 보면서 달리다 왼쪽으로 시선을 돌리니 도심지에 어울리지 않는 달동네가 펼쳐지며 볼티모어 시내 중심가의 옛 건물의 예술성 살린, 고풍(古風)스러운 깊이 있는 아름다움은 그림자도 없고... 정교하게 예술성을 살린 건축양식과는 달리 현대의 농축된 사람의 단면을 여과 없이 드러내고 있다. 그런 저런 생각을 하다 가면 첫 번째 물밑 잠행로 즉 볼티모어 하버 터널로 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좁고 색상이 어두운 편이지만 물밑으로 간다는 차 속의 안내지도를 보면서 인간 기술의 발달에 감탄한다. 약간 밝아지면서 벌써 터널은 끝나고 첫 번째 눈에 들어 온 간판이 메가 긱 팟(Mega Geek Pot)이다. 북행 95번 국도와 895번 도로가 합쳐지고 좀 더 그 길을 달리면 695번 도로, 서쪽은 타우슨(Towson), 동쪽은 에섹스(Essex)란 표시판이 뚜렷하다.
최근 이 근처를 중심으로 손꼽히는 미 동부 제일의 아름다운 환상도로(環狀道路)가 일 년 만에 공사 끝에 마무리 단계로 들어서고 있다. 머리 위로 옆으로 또는 눈 아래로 포물선을 그리면서 양사방으로 편리하게 뚫려 있다. 발달된 공법은 시속 100km의 고속도로가 뉴욕까지 곧 개통되게 할 것이다. 재료를 풍부하게 사용한, 아스팔트 길 거울같이 매끈하게 다듬어진 국도를 미끄러지듯 달리면 가을 옷으로 갈아입은 국도변의 숲은 여행자의 눈의 피로를 덜어준다. 눈을 좀 더 크게 뜨면 흐르는 구름,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거대한 화폭이 펼쳐지며 짙은 색, 옅은 색, 황금색 불타는 듯 몽실몽실 뭉쳐있는 나무 끝이 진정 가을이다.
몇 달 후면 두 살인 외손자와 즐겁게 놀다 푸짐한 저녁으로 포식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밤길이다. 서향 95번 국도를 통해, 이번에는 두 번째 잠행로, 즉 맥헨리 터널을 경유하며 볼티모어 시가지의 야경을 본다. 밤이면 더욱 생동감 넘치는 불빛 물 밑으로 불기둥을 만들고 방황하는 현대인을 용궁으로 안내한다. 시가지의 불빛은 더욱 밝게 흔들리며 고기잡이 나간 배 만선(滿船)을 축복하는 어화(漁火)를 보는 듯, 풍요를 만끽하며 늦은 밤 햄프셔 그린스(Hampshire Greens)에의 귀로(歸路)를 재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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