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4년 8월 1천5백만달러에 매입한 21층 한국센터 건물.
김옥 지사장, 1년간 100여 빌딩 둘러본후 최종선택
총영사관.외환은행.무역진흥공사 등 속속 입주
20세기 뉴욕 맨해튼의 중심이 어디냐고 물을 때 그 기준에 따라 각기 다른 대답이 나올 수 있을 것이다.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이 있는 34가 5애비뉴를 말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고 타임즈 스퀘어를 떠올리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또 유명한 삭스5th 백화점이 있는 5애비뉴 50가 근처를 주장하는 측도 있을 것이고 어떤 이는 다운타운 월 스트릿이 중심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35년 전 이 문제를 두고 고민한 김옥은 57가 파크 애비뉴 주변이 가까운 미래의 중심지가 될 것이라 굳게 믿은 사람 중의 하나다. 그리고 그 예측은 크게 빗나가지 않았음을 우리는 알수 있다. 미국 일류은행들의 본점이 그 무렵 파크 애비뉴를 중심으로 자리잡았기 때문이다.
미국 유학생 출신으로 워싱턴 주미대사관 상무관, 뉴욕총영사관 상무관을 역임한 김옥이 귀국했다가 1973년 다시 대한무역협회 상무겸 뉴욕지사장으로 발령을 받고 이임인사를 하기 위해 당시 박충훈 무역협회장을 방문한 자리였다. 박회장으로 부터 뉴욕에 가거든 빌딩 한 채 살 준비를 하라는 구두지시를 받았다. 그러나 과거의 관행으로 볼때 구두로 지시한 사항이 부도가 난 전례가 많기 때문에 그는 부임 초 그 진의를 파악하기 위해 슬로모션을 취했다. 서서히 빌딩 탐색작업을 하는 한편 본사 실무진에게 넌지시 상황을 알아봤을 때 글쎄요. 헛 고생인 것 같습니다.는 반응이 돌아왔다. 그런데 얼마 후 고위층으로 부터 무얼 꾸물거리느냐는 독촉이 떨어지자 오케이, 그러면 뛰자고 다짐했던 것. 이렇게 해서 한국 유사이래 해외소유 단일건물중 최대의 부동산으로 꼽히는 한국센터의 매입작전이 시동됐다.
이때 서울쪽의 요구사항은 1.맨하탄 중심지일 것, 2.말썽 없는 건물일 것, 3.매입예산은 5백만달러라는 것이었다. 지시를 받고 보니 그야말로 하늘의 구름잡는 이야기더라고 했다. 구체적으로 어느 지역이라는 지정 없이 중심지라는데 막연할 수 밖에 없었던 김옥은 전부터 안면이 있는 칼텍스 사장, 웨스팅 하우스 회장등 톱클래스 비지니스맨들을 접촉하면서 앞으로 뉴욕시가 어떻게 발전해 나가겠느냐는 질문을 던지며 자문을 구했다. 1년동안 빌딩 탐색작업을 벌이면서 뉴욕시내 1백여개에 달하는 빌딩들을 직접 둘러보았다. 밤에는 부동산에 대한 전문지식을 얻기 위해 부동산학교도 다녔다. 어렴풋이 윤곽을 잡았을 때 그는 1백여개 빌딩을 놓고 최종 4개로 좁히면서 예산액 5백만 달러 전액을 계약금으로 쓰자는 결심을 굳혔다. 마지막 단계에서 대상이 되었던 건물들은 1.현재의 파크 애비뉴 57가 코너 건물, 2.유엔본부 앞 알코아 빌딩, 3.컬
럼비아 픽처 빌딩(5애비뉴 56가와 57가 사이), 4.로렉스 빌딩(5애비뉴 51가)이었다. 그중 마지막 까지 경쟁이 되었던 로렉스 빌딩은 1층에 상점이 여러 개 있어서 이미지를 죽인다는 이유로 탈락됐다. 결국 지저분한 점포들이 없는 파크 애비뉴가 유리한 점수를 얻었고 총액 1천5백만 달러에 약정금 5백만달러로 매입이 확정된 것은 1974년 3월의 일. 담보 조건도 좋았다.
1차 담보는 전 소유주가 갖고 있던 것을 그대로 인수받아 7백만달러를 40년간 5,5%의 이자로 상환하는 조건이었다. 매서추세츠 뮤추얼 보험회사의 1차 담보는 당시로서는 공짜에 가까운 것이었다고 한다. 그해 담보는 매뉴팩터러스 하노버 트러스트 은행에 의해 당시 우대금리에 2%를 가산한 이자였다. 그와 같은 조건으로 매듭지은 클로징에는 박충훈 무역협회장을 비롯, 전 국무장관 윌
리엄 로저스 변호사, 김인권 당시 뉴욕총영사등이 참석했다. 그리고 그해 8월 입주할 수 있었다. 입주 전 법적절차를 밟을 때 ‘코리아 센터’라는 건물 이름을 미리 정해놓았으나 막상 등기를 하는 과정에서 비슷한 이름을 가진 한인단체가 있어 결국은 ‘한국센터’로 명명했다.당시 한국센터 건물에는 뉴욕총영사관을 비롯해 외환은행, 대한무역진흥공사(코트라)등 한국계 기관들이 속속 입주해 들어왔고 뉴욕한인회도 공간을 얻어 사무국 운영을 할 수 있었다.
뉴욕의 한국센터 건물 매입계약서에 당시 박충훈 무역협회장(앞줄왼쪽)과 건물주 가츠가 싸인하고 있다. 뒷줄 왼쪽부터 김옥, 윌리엄 로저스 전 국무장관(변호사), 김인권 뉴욕총영사.
박정희 대통령의 수출드라이브 현지사령탑 김옥
67년 상무관으로 부임후 대미수출 급신장
고려대 영문과를 졸업하고 미국에 유학, 플로리다 주립대에서 국제무역 전공으로 학사, 캘리포니아 산호세 주립대에서 석사학위를 받고 귀국한 김옥은 1961년 상공부 상무관으로 공직생활을 시작했다. 당시는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군사정부에 의해 수립될 무렵이었고 워싱턴에 주미대사관 상무관으로 부임한 그는 정일권 대사 밑에서 대미수출 확대의 가능성에 대해 면밀히 검토하던 시기였다. 당시 주요 수출품이라야 중석, 생사, 돈모, 광목 등에 불과했다. 중석은 오래전부터 한국 수출품의 주종이었고 조선견직, 달성 등에 의해 수출되던 생사는 그나마도 상댱량이 일본의 제품과정을 거쳐 미국으로 수출되었다. 페인트 브러시 제조용으로 인기가 높았던 돈모는 한때 많은 양을 수출했으나 털이 길고 좋았던 재래종 돼지가 개량종으로 바뀌면서 수출량이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삼호를 통해 수출되던 광목은 품질보다는 질기다는 장점이 있어 식당 웨이트레스, 간호사의 유니폼과 정육점 앞치마 용으로 인기가 있었다.
1962년은 제1차 경제개발계획의 원년으로 그해 한국의 수출총액은 5천670만달러 였으며 그중 대미수출은 전체의 25%에 불과한 1천4백만 달러였다. 그러나 그가 본부로 귀국하던 63년에는 8천440만달러에 대미수출은 28%에 달하는 2천360만달러로 신장되었다. 수출액이 1억달러를 넘어선 64년에는 수출의 날을 설정하고 유공자들을 표창하는 제도도 만들었다. 그가 다시 미국땅을 밟게 된 것은 제2차 경제개발계획이 시작되던 1967년 세계무역의 중심지인 뉴욕으로 임지가 결정되었다. 이른바 박정희 대통령의 수출 드라이브가 탄력을 받으면 서 대미수출의 총본부가 되는 뉴욕총영사관 상무관으로 임명된 것이었다.
상무관 주재 수출확대회의가 한달에 한번 꼴로 열렸고 이자리에서 지역별 수출 목표액이 설정되었다. 수출현지의 총사령탑인 상무관은 목표달성을 위한 확인업무를 지속적으로 수행해 나갔다. 이때부터 급신장하기 시작한 대미수출의 주종목도 섬유제품, 스웨터, 가발, 전자제품, 합판 등으로 그 모습이 바뀌었다. 특히 가발은 수출뿐만 아니라 재미동포들이 직접 본국으로 부터 수입해 도산매까지 영역을 넓히면서 주업종으로 각광을 받기 시작했다. 또한 와이셔츠, 신사복, 여자 블라우스 등이 미국시장을 착실하게 파고들었다. 1967년 한국의 총 수출액 3억5천8백만달러중 대미수출이 43%인 1억5천5백만달러를 점
한데 이어 68년에는 5억달러중 2억6천2백만달러를 돌파해 대미수출이 전체의 52%가 넘는 신장율을 보였다.
이후 대한무역협회로 자리를 옮겨 한국센터 매입의 주인공이 되었던 그는 1979년 무역협회 산하 코리아 헤랄드 뉴욕지사장으로 있다가 82년 공직에서 물러났다. 뉴욕이 제2의 고향이 된 그는 현지에서 은퇴하면서 재미동포가 되어 플러싱에 거주했다. 2007년 타계한 그를 기리기 위해 유족들이 지난 6월 고인의 유고집 ‘My Way, My Life를 발간했다. 유족으로 부인 김영자, 자녀 귀희, 영태(헨리김, 치과의사), 경태(제임스김, 공인회계사), 경희 등이 모두 미국에 살고 있다.
조종무<언론인,한국 국사편찬위원회 해외사료 조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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