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동란 후 대부분 가난했던 초등학교 시절, 장난감이나 텔레비전 등 놀이 꺼리가 없던 때라, 예수님이 누구신지도 모르면서 교회 종소리를 듣고 나 혼자 동네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다.
우리 집에 축음기와 레코드판이 있어 아마도 그 영향을 받았는지 어려서부터 노래 부르기를 좋아했던 나는 교회 어린이 찬양대에 들어가 매주 토요일 오후면 연습을 갔다. 지금도 이름이 생각나는 피아노 반주자는 교회에서 사시는 권사님의 아들인데, 그 당시 고등학교 학생인 그는 피아노 교육도 받지도 않았는데 전문가가 혀를 찰 정도로 피아노를 잘 쳤고, 고등학교 여학생 언니들에게 인기가 대단했다.
그 당시 피아노가 있는 집은 아주 부유한 가정이고, 피아노를 배운다는 것은 꿈도 꿀 수 없었던 가난한 시절에, 단지 피아노를 잘 치기 때문에 나는 그 학생을 좋아했던 것 같다. 그 학생이 연습 때 나오지 않는 날은 괜히 노래도 별 흥미가 없었다. 지휘자는 남자 대학생이었는데 사귀는 여자 친구가 있어서 사진을 보여주며 자랑을 하곤 했다.
같은 어린이 찬양대에서 함께 노래하던 친구가 있었다. 얼굴은 예쁘지 않았지만 목소리는 매우 고와서 노래를 잘했는데, 독창을 시키면 떨려서 잘 하지를 못하던 친구였다. 또 한 친구의 부모님은 같은 교회에서 찬양대원으로 봉사했는데 주일이면 그 어머니는 곱게 한복으로 단장을 하고 나왔다. 거의 매일 만나다시피 한 그 친구의 어머니는 우리 부모님들이 교회에 나오시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한 번도 물어본 적이 없는 것이 지금 생각하면 참 이상하다.
옆집에 살았던 한 친구는 키가 훌쩍 컸는데 무용을 좋아해 나랑 둘이 놀 때는 내 노래에 맞춰 신나게 춤을 추곤 했다.
성탄절 때가 되면 오색종이로 고리를 만들어 교회당 가장자리에 장식을 하고, 소나무에 반짝이는 금박지 은박지로 방울을 만들어 달고, 가늘게 자른 종이로 고드름과, 솜을 얹어 눈이 온 것처럼 성탄절의 분위기를 만들었다. 지금 생각하면 별로 예쁜 것도 아니건만 그때는 얼마나 마음이 설레곤 했는지! 그때의 그 때 묻지 않은 순수함이 그립다. 어느 해인가 교회에서 지교회를 세운 시골에 중고등부 학생들과 함께 원정(?)을 갔다. 그때만 해도 인심이 후한 때라 성탄 예배가 끝난 후 본 교회에서 온 손님들을 위해 떡이 시루째 들어오고, 아침은 상다리가 휘어지도록 차려진 밥상을 받았다
교회에는 나오시지 않던 우리 어머니는 일 년에 한번 성탄절이면 막내딸인 내가 부르는 노래를 들으러 오셨고, 성탄절 이브 촛불예배에 입을 하얀색 한복도 예쁘게 해주셨다. 성탄절 이브에는 언니와 나는 머리맡에 양말을 놓고 자면 어머니는 과자와 사탕을 집어넣어 주셔서 자다 깨어 그 먹던 기막힌 맛은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그 당시는 미국에서 구제품을 받던 때라 교회에서도 성탄절이 되면 선물이 들은 큰 자루를 산타가 어깨에 메고 어린이들에게 손을 넣어 하나씩 집으라고 했다. 들어 누우면 눈을 감고 일으키면 눈을 반짝 뜨는 곱슬머리 금발의 인형이 참 갖고 싶었지만, 집을 때마다 나오는 것은 요요나 연필 등이며, 끝내 인형은 못 가져서 그런지 노인이 다 된 지금도 그런 인형을 보면 사고 싶은 마음이 든다.
미국에 오셔서는 어린아이 같은 믿음을 가지시고 천사같이 사시다가 천국으로 가신 어머니를 비롯해 아련한 기억 속의 친구들, 지휘자, 반주자 등 아마도 많은 분들도 지금쯤은 이 세상 사람이 아닐지 모르겠다. 지나간 일 들, 옛 사람들은 기억에서 점점 사라져 가지만, 언제나 찾아주시는 주님, 언젠가 천국에서 만날 예수님과 어머니, 옛 친구들이 성탄절 때면 더욱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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