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오십이 넘은 세대들에게 고국에서 보낸 젊은 날의 크리스마스 기억은 어떤 것이 있을까. 호화로운 크리스마스 장식은 없었던 것 같다. 색종이로 고리 모양을 만들어 벽을 치장했던 기억이 새롭다. 거리에는 크리스마스 캐럴이 울려퍼지고, 동네 교회에서 울리는 종소리가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기도 했다. 가정에서 서로에게 선물을 주고받았던 기억은 없다. 그 옛적 크리스마스는 개인적인 의미의 절기라기보다는 집합적인 의미의 절기가 아니었나 생각한다.
그런 크리스마스의 배경을 가진 내가 아이들을 낳아 기르면서 집합적인 크리스마스의 분위기를 개인적인 크리스마스 분위기로 바꿔가는 데는 약간의 시간과 노력이 불가피했다. 크리스마스가 일 년 중 가장 의미 있는 절기로 자리 잡은 이 땅에 뿌리를 내리려 안간힘을 쓰고 있는 묘목의 안타까움이랄까.
아이들은 크리스마스가 며칠 남았는지 꼬막손으로 헤아리고 있고, 산타에게 보낼 목록은 크리스마스 날이 다가올수록 길어만 가고, 그 산타의 목록을 흘끗 훔쳐보는 산타의 마음은 달러로 환산되어 걱정이 불어나던 시절.
크리스마스가 아이들에게는 설렘으로 남편과 나에게는 고심으로 다가오던 어느 해 12월. 그 해 12월은 유난히 바빴다. 1마일은 족히 될 어린 세 자녀의 산타 목록을 생각하면서 마음까지 바빠지고 있었다. 아이들은 텅 빈 거실을 보면서 크리스마스 트리가 있어야 산타가 선물을 가지고 오는데 어떻게 하냐며 안달했다. 남편과 나는 꾀를 내어 아이들을 진정시키고자 했다. 올해는 산타가 크리스마스 트리까지 가지고 오겠다는 연락이 왔다고 하자 아이들은 실망스러운 눈치였지만 놀라워하기도 했다.
크리스마스 이브에도 우리 부부는 바쁜 일정을 마치고 자정이 거의 다 되어서야 집에 들어섰다. 아이들은 산타가 가져올 트리를 기다리다 지쳐 쓰러져 잠들어 있었다. 우리는 마지막 순간에 쓸어온 크리스마스 선물들을 포장하기 시작했다.
정작 선물 포장은 끝났는데 트리가 없었다. 남편은 뒤뜰로 나가 비뚤비뚤하게 서 있는 초록색 나무를 하나하나 뜯어보다가 한 놈을 눈여겨 보았다. 다른 나무들과는 뚝 떨어져 서 있던 4 피트 정도 되어 보이는 작은 초록색 나무. 남편은 외톨박이 나무를 자르며 우리 아이들에게 산타의 기쁨을 나눠 줄 것을 당부했다. 자른 나무의 밑동에 구멍을 만들어 어설픈 받침대를 세웠더니 트리가 똑바로 서지 못했다. 똑바로 세우려 아무리 노력을 해도 나무는 여전히 고개를 삐딱하게 기운 채 알록달록한 작은 알갱이 전구를 걸치고 힘겹게 서 있었다. 남편과 나는 그래도 크리스마스 트리를 완성했다는 만족스러움으로 산타가 이끄는 썰매 소리를 들으며 깊은 잠속으로 빠져들어 갔다.
새벽에 아이들이 흥분된 어조로 흔들어 깨우는 소리에 눈을 떴다. 방방 뛰는 세 아이들의 손에 이끌려 거실로 향했다. 거실 한 가운데 삐딱하게 서 있는 사이비 크리스마스 트리를 보는 순간 세 아이들은 일제히 박제된 시간을 머금었다. 놀란 토끼 눈. 턱이 떨어져 다물지 못한 입. 아이들은 동시에 뒤뜰이 보이는 베란다로 향했다. 그곳에는 잘려나간 나무의 밑동이 아직도 허연 살을 들어내 놓고 있었다. 아이들은 그 밑동과 거실에 놓인 크리스마스 트리를 번갈아 보았다. ‘산타가 어찌하여 우리 집 뒤뜰 나무를…….’
남편은 혼돈스러워하는 아이들을 향해 외쳤다. “아참, 어제 밤에 산타에게서 전화가 왔는데, 북극에서 크리스마스 트리를 썰매에다 가득 싣고 떠났는데도 하와이에 도착하기 전에 그만 동이나고 말았다더니, 뒤뜰에 있는 나무로 트리를 만들어 주고 갔구나.”
그러자 아이들은 약간 찌그러진 토끼눈으로 “진~짜~?” 하면서 산타의 신비스러운 성을 허물어가고 있었다.
이성애
워싱턴 여류수필가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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