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영어도 할 줄 모르고 아는 사람도 없고 돈도 없다. 아무도 우리를 거들떠보지 않으며 아는 척하는 사람도 없다. ...버려진 외롭고 가련한 고아처럼 느껴진다.”
이 마음저리고 슬픈 고백은 최근 이민 온 한인에게 들은 이야기가 아니라, 1885년 정치적으로 미국에 망명한 고 서재필 박사의 일기장에 써 있는 글이다. 그 후 120년 넘게 세월이 흘렀지만, 이민자들의 심정은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 같다. 우리는 정든 나라, 정든 사람들을 떠나 좀 더 잘 살아보겠다고 이민의 길에 올랐다. 미국에 오지 않았더라면, 인종차별의 서러움을 당하지 않았을 것이고 영어를 잘 하지 못해 창피한 일도 당하지 않았을 것이며 부모와 자식 사이에 문화적 격차로 어려움을 이다지 겪지 않았을 것이다. 이민생활로 인해 한국에서 겪지 않았을 심적, 정신적 고통을 겪고 독특한 사회적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그런데 더 힘들고 지치고 견딜 수 없게 만드는 것은 이런 자기의 고통을 풀 수 있는 여유와 힘이 없다는 것이다. “… 버려진 외롭고 가련한 고아처럼 느껴진다...”라고 이야기한 고 서재필 박사와 같이 힘들고 아픈 심정을 위로하고 이해하여 줄 사람이 없다는 사실이 더욱 가슴 아플 것이다.
돈을 벌기 위해, 사회적으로 인정 받기 위해, 자식의 교육을 위해, 더 나은 삶을 누리기 위해 미국사회에서 물불 안 가리고 몸이 부서지도록 바쁘게 뛰어다니지만, 정작 자신의 마음에서 울부짖는 내면의 소리를 놓치고 만다. 우리 이민사회는 많은 내면의 심리적 문제 요인을 가지고 있다. 부부 간에 서로 자기의 깊은 내면을 알아주기 원하지만, 오랫동안 진정한 대화를 나누지 못하고 사는 경우가 흔한 것 같다. 부모와 자녀 사이도 마찬가지이다. 아이들을 상담하다 보면, 상담시간이 재미있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 그 이유를 물어보면 부모는 자신에게 일방적으로 훈계하거나 부모들의 과거 이야기를 많이 하지 자신의 이야기를 진정으로 들어주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마음을 진정으로 잘 들어주기를 바란다. 자기의 말을 잘 들어줄 수 있는 사람이 주위에 아무도 없을 때, 사람들은 외롭다고 호소한다.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사랑하는 배우자, 자녀, 부모, 친구들의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마음을 기울여 들어주는 기회를 만들기를 바란다. 판단하지 말고 그 다음 무슨 이야기를 할 것인지 생각하지 말고, 이야기 도중에 끼어들지 말고, 그냥 잘 들어주자. 상대방에게 좋은 정보나 이야기를 해주어야 한다는 부담감을 가지지 말기 바란다. 상대방이 자기의 이야기를 잘 듣고 있는 것을 느끼면 자신이 받아들여지고 관심을 받고 있으며 자신이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상담에서 가장 효과적인 치유 방법은 내담자의 아픔을 있는 그대로 들어주고 이해해 주고 같이 그 고통 속에 함께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느 책의 저자가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면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꼭 물어보았던 질문이 한 가지 있었다. “당신이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 가장 그리워하는 행복했던 기억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이다. 이 사람이 물어보았던 사람들은 박사, 의사, CEO, 연예인, 암 환자, 거지, 창녀, 마약 중독자 등 다양한 사람들이었다. 국적이 다르고 다른 환경 속에 사는 사람들이었지만 답변은 거의 비슷하였다. 놀랍게도 그 누구도 돈이나 직업, 높은 학력과 관련된 답을 한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모두 가족, 애인, 친구들과 관련된 답변들이었다. ‘사람은 사람과 함께 행복한 순간을 만든다’라는 저자의 말에 깊이 공감한다. 우리가 가정, 직장, 공동체 안에서 진정한 대화, 진정한 행복을 나누고 있는지 2009년을 마무리하면서 진지하게 생각해 보기 바란다. 사랑하는 사람의 손을 꼭 잡고 눈을 바라보면서 ‘사랑한다.’ ‘미안하다.’ ‘고맙다.’라고 이야기해보자. 이것이 가장 좋은 2009년의 선물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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