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포 참정권 시대 2년앞…‘기대반 우려반’
유권자 240만명 무시못할 표심
우편투표 배제 등 졸속시행…투표율 저조 예상
동포사회 정치바람.분열 우려
2012년 4월3일 오전 8시. 김대한(57, 플러싱 거주)씨는 아침 일찍 부인과 함께 맨하탄 57가에 위치한 뉴욕총영사관에 들어섰다. 한국 국회의원을 뽑는 선거에 참여하기 위해서였다. 선거 안내판을 따라 도착한 2층 투표소에는 벌써 10여명의 사람들이 기다랗게 줄지어 서 있었다. 평일인 관계로 다들 출근하기 전 서둘러 투표소에 먼저 들른 모양이었다. 김씨 부부도 선거인 명부 대조작업을 끝내고 기표소 앞에 줄을 섰다. 한쪽에선 여당 지지자와 야당 지지자 간에 뜨거운 설전도 들린다. 하지만 김씨는 TV선거 방송을 보고 이미 마음을 굳힌 터라 별 관심이 가진 않는다. 다만 아들 녀석을 데리고 오지 못한 게 마음에 걸렸다. 대학생인 아들은 “동포들과 별 상관도 없는 한국 정치인 뽑는데 왜 귀찮게 총영사관까지 가서 투표를 해야 하냐”며 말도 꺼내지 못하게 했다. 하긴 델리업소를 하는 옆집 이 선생도 “쓸 데 없는 재외국민선거는 왜
도입해서 동포사회를 사분오열시키는지 모르겠다”며 역정을 낸 것을 보면 아들 생각도 아주 틀린 것은 아니리라. 이런 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 차례가 왔다. 기표소에 들어가 투표를 한 후 아내와 함께 이내 가게가 있는 맨하탄 다운타운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참정권 시대 개막 카운트다운
2012년 봄 대한민국 헌정사상 첫 재외국민선거가 실시될 뉴욕총영사관 투표소의 모습이다. 지난해 2월 한국 국회가 재외국민들에게 참정권을 부여하는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통과시키면서 재외국민투표를 위한 준비가 착착 진행되고 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이를 토대로 올해부터 동포사회를 대상으로 본격적인 홍보활동에 나설 예정인가 하면 재외공관별로 모의투표를 통해 선거의 실무상 문제점을 최종 검증할 계획이다. 미주 지역은 물론 전세계 동포들의 숙원이었던 ‘재외국민 참정권 시대’의 개막을 위한 카운트 다운에 돌입한 것이다.
지난 2월5일 한국 국회에서 통과된 공직선거법 개정안은 약 240만명에 달하는 19세 이상 재외국민들에게 대통령 선거와 국회의원 비례대표 선거에 투표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줬다. 한국에 주민등록이 있는 단기 체류자(유학생, 주재원 등)의 경우 지역구 국회의원 선거에도 참여할 수 있으며 지방자치단체 관할구역에 거소신고를 한 재외국민에게는 지방 선거 참여도 허용했다.그러나 재외동포들이 적극 요구했던 우편투표와 인터넷투표, 선상투표 등은 비밀투표 원칙에 위배된다는 이유로 결국 배제됐다. 재외공관 방문 투표를 원칙으로 한 것이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추산하는 재외동포수는 300만명 안팎. 이 가운데 성인을 80%로 볼 때 19세 이상 참정권 대상자는 대략 240만명으로 예상되고 있다.
■한국 정치권 표밭갈이 본격화, 동포사회 ‘기대 반 우려 반’
이처럼 재외국민선거 시행이 2년 앞으로 다가오면서 재외국민의 표심을 사로잡으려는 한국정치권의 물밑 각축이 이미 시작되고 있다. 최소한 100만 명이 넘는 재외국민이 투표권을 행사할 경우 박빙의 승부가 벌어지는 선거구는 물론 대선에서도 중대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실제로 15대, 16대 대선은 각각 39만표, 57만표라는 근소한 차로 당락이 결정된 바 있다. 이에 따라 한국의 여·야당과 유력 정치인들은 공직선거법 개정이후 뉴욕 일원에 후원회를 잇따라 결성하고 있으며, 기존 조직들이 세확산을 위한 재정비에 힘을 모으고 있다.
이미 전 민주당 대통령후보였던 정동영 의원이 이사장으로 있는 한민족경제비전연구소 뉴욕지회가 창립돼 활동에 들어갔는가 하면 이재오 전 한나라당 의원의 지지모임인 ‘재오사랑’ 뉴욕지회도 결성 준비 중에 있다. 지난 한국 대통령 선거 이후 휴식기를 가졌던 한나라당 뉴욕후원회도 회원 모집 활동을 재개했다. 재외국민 참정권 시대를 앞두고 조직을 재정비해 동포사회에 한나라당 이미지를 우호적으로 확산시켜 나가겠다는 구상이다. 친 민주당계 동포인사들도 모임 준비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추진되는 모임은 동포사회의 의견을 수렴해 중앙 당위원회가 동포정책을 수립하는 데 서포터 역할을 할 수 있는 방향으로 구성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동포사회는 일단 이 같은 행보에 대해 향후 동포들의 권익신장이 대폭 향상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간 재외동포사회를 향해 생색내기에 급급했던 외교통상부가 올해 ‘재외공관 주요행사비’로 지난해보다 49억원 늘어난 110억원을 편성한 것만 봐도 이미 재외동포들을 대하는 한국정부와 정치권의 시각이 바뀌기 시작됐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이처럼 장밋빛 미래만 있는 것이 아니다. 가장 큰 문제는 역시 동포사회 분열에 대한 우려다.
한국 정치판의 잘못된 관행이 자칫 선거를 통해 동포사회로 옮겨 붙어 동포들끼리 네편, 내편으로 갈라서는 몸살을 겪을 수 있다는 시각이다. 최근 한나라당에서 재외국민 800명을 상대로 실시한 설문 결과, 전체 응답자의 60.4%가 참정권 시행으로 동포사회가 분열될 것으로 대답한 사실도 이 같은 걱정을 뒷받침하고 있다.
■‘미완의 참정권’ 파행 우려
현재 제정된 재외국민투표권 규정 곳곳에 현실과 동떨어진 허점이 많아 졸속시행의 지적도 잇따르고 있다. 먼저 우편 및 인터넷 투표방식을 배제한 것과 국회의원 선거의 경우 영주권자에겐 비례대표에 대해서만 투표권을 부여한데 대해 ‘참정권의 사각지대가 여전하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이 때문에 한국 국회에선 지난 9월 우편투표와 투표소 확대를 골자로 한 개정안을 발의했으나
통과 가능성 여부는 아직 불확실한 상태다. 부정선거에 대한 우려 역시 정부가 뒤늦게 공소시효를 5년으로 연장하고, 선거사범의 입국제한을 검토하는 등 불법선거 처벌방안을 마련하고 있지만 해외는 치외법권 지역으로 한국 수사기
관이 사실상 처벌할 수 없다는 점에서 불완전한 방안이 될 수 밖에 없을 것이란 게 공통된 견해다.
선거운동과 유세방식도 도마 위에 올라 있다. 규정에 따르면 재외국민 유권자에 대한 선거운동과 유세는 정부가 지정한 한국의 위성방송과 인터넷, 전화 등을 통해서만 가능한 상태다. 이렇게 되면 유권자들의 알 기회가 불가피하게 박탈될 수밖에 없다. 규정대로 한국 위성방송을 통해서만 선거홍보 및 유세가 펼쳐진다면 유료 위성방송 네트웍에 가입해야만 정보를 얻게 된다는 얘기가 된다. 또한 인터넷을 통한 선거홍보나 유세도 대부분 이민 1세대 노년층 유권자가 제약없이 자유롭게 인터넷을 이용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실효성에 큰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을 것이란 지적이다.
■투표율 저조 예상
인력과 예산 역시 무시못할 난제가 되고 있다. 외교 공관에 마련될 투표소마다 1~2명의 공무원을 파견해 해당 지역 선거관리위원회를 구성하겠다는 계획이지만 역부족이라는 지적이다. 무엇보다 재외선거 예산이 충분히 확보되지 않아 졸속시행 마저 우려되고 있다. 한국 정부는 본격적인 선거 준비와 홍보가 시작될 2010년 재외국민선거 예산으로 선거관리위원회가 요청한 43억원에서 절반 이상이나 삭감된 17억5,000만원 만을 배정한 상태다. 이같은 예산은 선거 홍보비용이 대폭 준 것으로 아직도 많은 재외동포들이 홍보 미흡으로 재외
선거시행 사실 조차 모르고 있는 상황에 이 같은 예산 부족은 자칫 투표 참여를 크게 떨어뜨릴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실제로 홍정욱 한나라당 의원이 지난 9월 미국내 성인 동포 25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전체응답자의 33.5%는 재외국민 참정권 부여사실을 아예 모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 바 있다.
특히 투표권 부여사실을 ‘알고 있다’고 대답한 응답자 중에서도 ‘반드시 참여하겠다’고 답한 응답자는 18.5%에 그쳐 5명 중 1명꼴로만 투표 참여의사가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는 중앙선관위가 자체 여론조사를 바탕으로 240만명의 재외유권자 중 167만영이 선거인 등록을 하고 실제 투표는 전체 유권자 가운데 50% 이상인 134만여명이 참여할 것으로 예측한 통계와 큰 격차를 보이는 것이다. 이와 관련 박윤용 뉴욕한인권익신장위원회장은 “현재 제정돼 있는 재외국민선거 규정의 여러 제약을 개선시키지 않을 경우 오히려 역효과만 발생할 수 있다”면서 “지금이라도 한국 정치권의 전향적인 규정 개선과 시행 세칙 마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김노열 기자>
선거권자 참여할 수 있는 선거
영주권자 대통령 선거, 비례대표 국회의원선거
일시 체류자 대통령 선거, 비례대표 및 지역구 국회의원 선거
재외선거 일정
D-180~D+30 공관마다 재외선거고나리위원회 설치
D-150~D-60 재외선거인 등록신청(영주권자)/국외부재자 신고(일시체류자)
D-39~D-35 재외선거인명부 및 국외부재자신고인명부 열람
D-25까지 재외투표용지 발송
D-14~D-9 재외투표(6일중 정하는 기간)
D-DAY 선거일(국내 투표, 개표)
투표절차
반드시 재외투표소에 가서 선거관리위원회에서 미리 받은 ▶투표용지 ▶발송용 봉투 ▶회송용 봉투, ▶여권 등을 제시하여 본인 확인을 받은 후 기표소에 들어가 후보자 명칭이나 정당명칭, 기호 등을 투표용지에 ‘직접 쓰고’ 회송용 봉투에 넣어 풀로 붙인 다음 투표함에 넣으면 된다.
지난해 뉴욕총영사관에서 열린 중앙선관위 재외국민선거 설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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