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이면 부모의 델리가게에서 일손을 돕는 고교 9학년생 황모양은 얼마 전 업소를 찾은 흑인 손님 앞에서 부모 때문에 수치심을 느껴야 했다. 행색이 그다지 깔끔하지 않은 흑인 손님이 들어오자 부모는 한국인 종업원에게 한국어로 “연탄(흑인 비하성 표현)이다. 도둑놈 같으니까 잘 살펴봐라!”며 경계를 당부했다.
잠시 뒤 구입할 물건을 카운터에 올려놓던 그 흑인 손님은 한국어로 차분하게 “사장님, 말조심하세요! 제 아내가 한국인이라 저도 한국어 알아요”라는 한마디 말을 남기고는 계산 후 업소를 떠났다. 황양은 흑인 손님에게도 한없이 미안했지만 주의 깊지 않은 언행을 일삼고도 아무렇지 않아하는 자신의 부모가 그렇게 부끄러울 수 없었다. 올해 고교 10학년인 박모양은 얼마 전 친구문제로 마음에 큰 상처를 입고 부모에게 아예 ‘마음의 문’을 닫아버렸다. 복잡한 집안문제로 방황하기 시작하면서 며칠간 무단결석했는데 부모는 ‘나쁜 친구들과 어울린 결과’라며 자신이 소중한 친구들을 마구 욕하는 모습이 경멸스러
웠기 때문이다.
백인 친구들에겐 마냥 너그러우면서도 특히 소수계 출신 친구들은 경계하며 선입견을 갖고 대하는 부모의 태도가 한없이 위선적이란 생각이 들어 더 이상 대화할 가치를 느끼지 못할 지경에 이르렀다.주류사회에서 조금이라도 홀대받으면 ‘인종차별’이라며 발끈하는 한인 이민 1세대들이 정작 다른 소수계 타인종에게는 주류사회에서 자신들이 받은 차별보다 더 심각한 수준으로 냉대하고
낮게 취급하는 위선적인 태도에 한인 1.5·2세들은 깊은 실망감을 감추지 않는다.
유스&패밀리포커스 대표 이상숙 전도사는 “실제로 청소년 상담건수의 30% 정도가 소수계 타인종 친구관계에서 비롯된 부모와의 갈등이 차지하고 있을 정도”라고 말했다. 부모가 인종문제에 대해 위선된 태도를 보이는 한 아무리 좋은 얘기라고 청소년 자녀들이 부모의 조언을 가치 있게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가 될 리 만무하다고 지적했다.
타인종 소수계 학생들이 나쁜 친구여서 한인 청소년들이 탈선의 길로 빠진 것이 아니라 가정이 시끄럽고 부모가 자녀의 입장에서 먼저 생각하고 고민해주지 않으니까 점차 학교생활이 불성실해진 것뿐인데 단지 피부색을 기준으로 교우관계를 저울질 하는 것이 비인간적이라고 한 목소리로 지적한다고. 이 전도사는 “자식이 왜, 무엇 때문에 힘들어하는지를 우선 생각하지 않고 다른 사람을 먼저 탓하며 책임회피하는 자세부터 시급히 바꿔야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자신의 자녀가 어떤 힘든 상황을 겪고 있는지부터 살피는 것이 이민 1세로서 다문화 사회를 살아가는데 있어 뒤처지지 않는 사고를 지닌 부모의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이정은 기자> juliannelee@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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