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출판계에 화제가 되고 있으며 한인 독자들에게도 필독을 권할만한 두 권의 책이 나왔다. LA타임스 서울특파원과 북경지부장을 지낸 바바라 데믹 기자가 7년간 탈북자들을 인터뷰한 르포 ‘Nothing to Envy(세상에 부럼 없어라)’와 한인 2세 소설가인 프린스턴 대학 이창래 교수의 소설 ‘서렌더드(The Surrendered)’가 출시됐다. 데믹 기자는 퓰리처 상 후보에 오른 분쟁지역
전문 저널리스트며 이창래 교수 역시 헤밍웨이 문학상을 수상한 베스트셀러 작가. 무게가 만만치 않은 저자들의 기대작들이다.
“비참한 곳 사는 사람들의 처절한 이야기”
■ Nothing to Envy(세상에 부럼 없어라)
BABARA DEMICK(바바라 데믹) 지음
정치적 르포 아닝 6명의 탈북자 스토리 엮어
북한주민들, 식량난 이후 당국 인식 달라져
▲사람이 살고 있었다.
책을 집어 들고 “또 다른 탈북자 이야기?”라는 반응을 보일 수도 있다. 90년대 극심한 식량난으로 난민이 급증하면서 북한 주민들의 비참한 상황들이 연일 보도되고, ‘요덕 이야기’ 등 관련 다큐멘터리가 계속 상영되면서 이제는 다소 식상한 주제가 된 것이 탈북자들의 증언이기 때문이다. 즉, 오랜 기간 철저하게 외부와 차단되었던 고립의 땅, ‘동토의 왕국’ 북한의 실상이 드디어 세계인에게 공개되기 낱낱이 밝혀진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다는 북한의 실상은 과연 얼마나 그들의 참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인가? 바바라 데믹 기자가 이 책을 쓴 목적은 이런 물음에서 시작되었다. 무표정한 시민들, 마네킹처럼 웃고 있는 평양의 인간 전시물들, 기계처럼 행진하는 군인들, 인육을 먹을 만큼 굶주리고 있는 난민들의 비참한 표정들. 모두 거짓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데믹 기자는 “그것이 다는 아닐 것이다, 그래도 사람이 살고 있는 땅인데 사람의 감정을 가진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가 분명 있을 것이다”라고 생각했다. 그가 인터뷰 내내 강조한 것은 이 책이 정치적인 르포가 아닌 사람들의 사연이라는 것.
“그들도 사랑을 하고, 질투를 하고, 화를 내고, 웃기도 하고… 사람이니까요, 그렇지 않을까 궁금했습니다.” 그리고 그가 만난 6명의 탈북자 이야기를 묶은 이 책은 결국 “특별하게 비참한 곳에서 살아가는 보통 사람들의 처절했던 이야기”다. 그들이 사랑에 빠지고, 가정을 꾸리며, 야망을 키우고, 생존을 위해 싸우고, 정부가 자신을 속였다는 인식에 눈을 뜨는 과정들이 베테
랑 여성 저널리스트의 섬세하고 세밀한 문체로 묘사되고 있다.
▲영화처럼 드라마틱하고 영화처럼 슬픈 사회
12살의 한 소녀가 이웃의 15세 소년과 만났다. (Boy meet Girl 은 모든 스토리의 원형이다) 이메일과 핸드폰 등 커뮤니케이션 수단이 전혀 없는 청진의 한 작은 마을에서 소년은 해가 지면 소녀의 집 근처에서 2~3시간을 무작정 기다렸다. 소녀는 부모가 잠이 들면 몰래 집을 나왔다. 이들에게 북한의 전력난은 큰 행운이었다.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이 없었다면 동네에서의 설익은 데이트는 꿈도 못 꿨을 것이다. 그럼에도 남의 눈에 보일까 맘 졸이던 이들은 그 어둠속에서도 일정한 거리를 두고 무작정 걸었다. 이들이 처음 손을 잡은 것은 3년이 지나서였고, 그로부터 6년이 지나서야 첫 키스를 했다. (학교 선생님이 된 여자는 26살때까지 임신의 과정을 정확하게 몰랐다.) 그러나 이들의 러브스토리는 여인이 가족과 함께 남한으로 망명하면서 끝이난다.
중학생 포르노 셀카가 인터넷에 떠도는 대한민국에서는 ‘국경의 남쪽’으로 대표되는 영화 시나리오 이상의 현실성을 가질 수 없는 이야기지만, 이 책에 등장하는 미란(가명)의 이야기는 동시대를 살고 있는 북한땅에서 여전히 진행 중인 사랑의 방법이다.
▲고난의 행군은 너나 해라
거의 초현실적으로 고립되고 억압된 전체주의 국가 북한에서 살아 온 사람들은 김일성 부자와 당의 선전처럼 “세상에 부럼 없는” 인민 낙원에서 살고 있다고 오랫동안 믿어왔다. 그래서 당의 요구대로 굶어 죽어가는 자식을 품에 안고 ‘고난의 행군(Arduous March)’를 벌어왔다. 그러나 동독 특파원으로 베를린 장벽 붕괴를 지켜봤던 저자는 “사회주의 붕괴 당시 동,서독 경제 격차의 4배 이상 남북한 경제 차이가 벌어져 있다”있다며 “많은 전문가들에게 북한 체제의 존속은 그 자체가 신비일 정도”라고 말했다. 이 책에서 데믹 기자는 언제, 어떤식으로 북한의 현 독재체재가 무너질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저자가 인터뷰한 6명의 탈북자들은 북한체재내에 심각한 균열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산 증인들이다.
북한이 수립된 45년 출생한 ‘옥선(가명)’은 50년 넘게 단 한 번도 체재에 대한 의심을 가져본 적이 없는 열성 단원이었다. 그런 그도 길거리에 방치되어 있는 굶어죽은 시체 더미들을 보면서 목숨을 건 탈북을 감행할 수 밖에 없었다. 그는 자신을 속여온 위대한 지도자들에게 정말로 분노하고 있었다.저자가 희망을 갖는 것은 북한 사람들이 로봇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감정이 있고 목숨이 중요한 사람이라는 사실이 이 비참한 현실을 끝낼 수 있는 가장 큰 희망이기 때문이다.
■주요 서평
“세상에서 거의 제일 억압된 전체주의 국가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북한에서 살았던 여섯 명의 새터민의 삶을 경탄할 만큼 대단히 개인적인 시각에서 서술한 작품. 데믹 기자의 이 작품이 아니었다면 서양 독자들에게 북한 일반 서민들 삶의 이야기는 알려질 수 없었을 것이다.”
- 퍼블리셔스 위클리(Publishers Weekly)
각 인물들의 개인 이야기 서술을 꿰뚫어보는 언론인의 목소리와 강력하게 잘 조화시킨 데믹 기자는 희미한 한 가닥의 희망만이 종지부를 찍을 수 있는 헤아릴 수 없는 고통을 이겨낸 용기 있는 개인들과 그들이 살았던 포악한 국가의 실상을 생생하고 사실적으로 그린다.
- 북리스트 (Booklist )
전행이 미친 정서적 영향 그린 서사 소설
■ 항복한 사람들(The Surrendered)
이창래(Chang-Rae Lee) 지음
이창래 교수 6년만에 발표한 신작 ‘항복한 사람들’은 작가가 20년전부터 구상했다고 밝힌 야심작이다. 한국전 고아인 소녀 준과 미국병사 헥터 그리고 선교사의 딸 실비의 30년에 걸친 삶을 담은 작품으로 50년대의 한국, 80년대 뉴욕 그리고 30년대 중국이 교차 편집되고 있는 서사 소설이다. 특히 한국계가 등장하지 않았던 전작 ‘얼롭트’ 이후 다시 그의 작품 원형인 한국과 한국인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이창래 교수는 1965년 서울에서 태어나 3살 때 가족과 함께 오레곤주로 이민한 후 뉴욕주 웨체스터에서 자랐다. 예일 대학교 영문과 학부를 졸업하고 오레곤 대학교에서 문예창작 석사학위(MFA)를 받고 월스트릿에서 증권분석가로 일하기도 하였다.1995년 첫 소설 ‘네이티브 스피커(Native Speaker)’로 PEN/헤밍웨이상, 아메리칸 북 상 등 미국 문단의 6개 주요 상을 수상했다. 1999년에는 두번째 소설 ‘제스처 라이프(A Gesture Life)’를 2004년에는 ‘얼롭트(Aloft)’를 발표했다. 현재 프린스턴 대학교 문예창작과 교수로 있다. 다음은 출판사인 리버헤드 북 관계자가 독자들을 위해 작가와 나눈 대화 내용이다.
20년 전부터 구상. 집필기간만 6년 걸려
50년대 한국.80년대 뉴욕.30년대 중국 교차 편집
* 집필기간이 6년이나 걸렸다. 소설의 구조를 엮는데 시간이 많이 필요했던 것 같다.
- 나에게 구조는 인물에게서 나온다. 그런데 다양하고 같은 무게로 중요한 인물들을 등장시키다 보니까 시간이 오래 필요했다. 결국 아주 오래전부터 구상해 온 작품이지만 실제 결과물은 애초의 내 생각과 아주 다르게 전개된 소설이 되었다.
* 이 책의 영감을 한국전 피난민이었던 작가의 아버님에게 얻었다는 말을 했는데 실제로 얼마나 경험이 반영되어 있나?
- 첫 번째 장이 아버지와 가족들이 겪은 경험을 근거로 했다. 1950년 피난 열차에 있던 중 끔찍한 사고로 아버지는 삼촌을 잃었다. 아버지는 아주 자세한 기억을 하지 못해서 내가 상상력을 가미해 그 상황을 묘사했다. 사실 나머지 장은 모두 논픽션이다. 나는 어린 시절 늘 행복하고 활기차 있었지만 대학에 가서야 아버지가 전쟁의 트라우마를 오랫동안 간직한 것을 알게 되었다. 아마 그런 경험들이 무의식중에 작품에 녹아있을 수도 있다.
* 소설속 여 주인공 준이 대장암에 걸리는 데 작가의 실제 어머니도 대장암으로 죽었다. 역시 개인적인 경험이 반영된 것인가?
-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내말은 의도적인 설정은 아니지만 20년전에 있었던 어머니의 죽음과 고통스러웠던 투병 과정이 여전히 떠오르기도 한다는 의미다.
* 준이 대장암으로 죽는 설정이 무척 역설적이다. 전쟁고아로 극심한 기아에 허덕였던 그녀가 결국 폭식으로 인해 병을 얻는 다는 것은 전쟁의 외상이라는 메타포인가?
- 자료 조사를 하면서 사람이 얼마나 굶주릴 수 있을까 하는 것에 대해 놀랐지만 동시에 사람이 얼마나 탐욕스러워 질 수 있는 가에 대해서도 같은 느낌을 받았다. 성인이 된 준이 결코 매력적인 인물로 그려지지 않은 것은 그녀가 겪은 고통의 깊이에 비례해 탐욕도 그만큼 커졌기 때문이다.
* 올해가 한국전 발발 60주년이기 때문에 더 의미가 있는데, 본인은 ‘전쟁 소설’로 규정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
- 물론 전쟁이 소재가 되고 많은 부분에서 전쟁 상황이 묘사된다. 하지만 내가 관심을 갖는 건 전쟁 그 자체가 아닌 전행이 미친 그 이후의 장기적인 정서적 영향이다. 엄밀한 의미가 전쟁 소설이 아니라고 말한 이유다.
작가는 3월 9일 오후 7시 30분 링컨트라이앵글 반즈&노블에서 독자와 만남의 시간을 갖는다.
<박원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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