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꽃은 사랑을 일깨워 준다. 겨울눈이 풍성하면 대지가 비옥해지고 풍년이 든다고 했다. 2월 들어 워싱턴 메트로폴리탄을 강타한 폭설 사태는 110년 만의 신기록을 세우며 산더미처럼 높이 쌓였다. 연방정부와 학교가 다 폐쇄되고 울고 웃는 요지경들이 흰 꽃 속에 번졌다.
신문은 이 지경의 사회상을 스노셜리즘이라는 새로운 말을 만들어 냈다. 즉 눈(Snow) +사회집단행태(Socialism) = 스노셜리즘(Snowcialism)이 생긴 것이다.
폭설 속에서 보여준 공동체 정신은 큰 빛의 봉사 정신으로 발휘됐다고 워싱턴 포스트(11일자)는 보도했다. 미국 국력의 근간은 ‘봉사정신(Volunteerism)’이다. 폭설로 정전된 이웃 가족을 자기 집에 초대해 함께 재워 주고, 4륜 구동차를 가진 주민들이 응급 사태에 처한 이웃을 수송해 주는 일, 추위에 떠는 노인들에게 택시로 약 배달을 시켜 주는 등의 미담들이 들려 혹한 속에서도 우리 마음을 따뜻하게 했다.
필자도 주변의 ‘쓰라’는 종용에 몇 자 적는다. 필자가 거주하는 비엔나 지역에 폭설로 인해 정전이 발생했다. 눈 속에 갇힌 노인과 가족이 난방장치와 더운 물통에 고장이 생겨 떨고 있는 이웃들이 모텔에도 못 가고 고생하고 있었다. 골목길에 쌓인 눈은 허리까지 차올라 고장 수리차나 응급차도 드나들 수 없을 만큼 나빴다. 필자는 가난한 유학생 시절 학비를 벌기 위해 전기기술을 익혔었다. 아주 오래 전의 녹슨 경험이 서른 한 집의 전기와 난방을 되살려 주는데 기여했다. 일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하얀 눈 위를 날으는 듯 가벼웠다.
사실 이웃들의 감사하는 ‘눈망울’은 감동적이었다. 돈보다 소중한 진실이었고 따뜻한 마음이 오가는 감동이었다. 아름다운 이웃들이 전해 준 고마움에 대한 찬사는 ‘돈 받지 않는 자원봉사’의 경계를 벗어나 신뢰를 보여 준 코리안의 보람이었고 기쁨이었다. 빙그레 선한 미소는 눈꽃이 베풀어 준 선물이었다. 발렌타인스 데이와 설날에 받는 ‘세뱃돈’같은 동심의 순수함으로 세상이 밝아지는 것 같았다.
한 친구는 말하길 나의 행동이 실수였다고 꼬집는다. 세상사가 악한데 ‘몸조심 하라’는 경고였다. 그 첫째가 남녀가 유별하니 혼자서는 들어가지 말고, 둘째는 완전한 수리를 못해서 개스 폭발이 생길 위험과 배상, 셋째는 계약서 확보 등을 들었다. 그러나 친구의 인색한 기우로 알고 싶다.
한 가지 고백할 것은 폭설 속에 나를 돕겠다고 나선 흑인 자원봉사자는 문전박대를 당했다는 사실이다. 이웃 주민 거의 가 백인인 동네에서 옆에서 거들어 줄 손이 필요했지만 나 혼자 일을 마쳐야 했다. 하도 충격적이라 나중에 지역 주민에게 물으니 “내 부모는 절대로 이방인(흑인)을 들이지 말라고 했다”는 답이었다. 그 흑인친구는 자기 집을 고쳐 준 나를 신세 갚는다고 따라 붙은 순수한 사람이었다. 가슴 아픈 현실이다. 백인 우월주의는 얼마나 더 오래 지속될 것인가.
냉혹한 겨울 찬바람 속에서 피어난 따스한 공동체 정신은 더 소중하다. 애난데일의 고등학교 영어교사는 출산 예정일을 맞아 아침 일찍 집을 나섰다. 나흘 동안 몰아닥친 폭설로 집근처는 눈밭이었고 자동차도 눈에 파묻혀 움직일 수 조차 없었다. 그녀가 발을 동동 구르고 있을 때 이웃 주민 6명이 삽질을 하여 뚫고 나갈 수 있게 해 주었었다. 이웃은 이래서 소중한 것이리라.
사랑 공동체는 원자탄보다 강하다. 사랑에 인색한 사람은 건강도 나빠진다는 연구결과도 속속 발표되고 있다. 성경은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마 22:39)고 가르치고 있다.
스노셜리즘은 감초같은 맛이 난다. 씹으며 말할 수록 잘 먹혀 들어가고 얼음도 녹이는 설득력이 있다. 때로는 이웃이 형제보다도 좋다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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