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16일은 시인 윤동주가 일본 후꾸오까 형무소에서 운명한 65주년 기일이다. 고등학교 때 윤동주의 서시(序詩)를 접하는 순간 그것은 나에게 신선한 충격이었다. 여린 여인의 손길 같기도, 나약한 듯 하기도한 그의 시를 읽고 웬 충격이냐고 할지 모르지만 나의 감정은 그랬다. 윤동주는 운명하기 얼마 전 후꾸오까 형무소 독방에서 자기 운명을 예감한 듯 비장한 ‘무서운 시간’이란 유시를 남긴다.
“거 나를 부르는 것이 누구요/ 한번도 손들어 보지 못한 나를/ 손들어 표할 하늘도 없는 나를/ 어디에 내 한 몸 둘 하늘이 있어/ 나를 부르는 것이요/ 이리 마치고 내 죽는 날 아침에는/ 서럽지도 않은 낙엽이 떨어질 텐데/ 나를 부르지 마오.”
대개 사람들은 그의 시가 아름답다는 것, 가까이 있는 사랑하는 사람을 대하는 느낌을 같게 한다는 것, 순수하다는 것, 또 어떤 일본인은 윤동주는 신기한 느낌을 주는 사람이라고도 얘기한다. 문학평론가들은 윤동주의 시는 부끄러움의 미학이라던가, 하늘과 대화한 시인이라고 한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과연 신이라고 한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이야기하고, 꿈꾸고, 자신할 수 있을까? 그리고 나 자신을 한번 돌아본다. 돌아본다고 하지만 그것은 잠시이고, 내게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 꿈꾸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은 한 순간이었다.
아마 윤동주처럼 아름다운 영혼을 가진 시인에게나 가능한 일일테고, 우리는 하늘을 우러러 크게, 너무너무 부끄러움이 없기를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그의 공식적인 죄목은 한글로 시를 썼다는 치안유지! 법 위반이었다고 하며, 실험용 주사를 반복해서 맞았다고 한다. 그것은 바닷물(소금물)이었다고 각종 정황으로 추론할 뿐 일본은 끝내 침묵한다.
우리가 링거(ringer)라고 하는 생리 식염수, 그 시절엔 아직 상품화되지 않았던, 일제의 막바지 전선에 피의 대용품이 절실했던, 그 실험의 대상으로 해방을 6개월여를 남기고 일제의 희생양이 되어야 했던, 그 후꾸오까 형무소는 죽는 것보다 살아남는 게 더 힘든 참혹한 곳이었다고 한다.
그는 십자가란 시에서 “행복한 예수 그리스도에게처럼 십자가가 허락된다면”하고 노래한다. 자신이 그리스도처럼 암울했던 민족의 제단에 오를 깨끗한 제물이 되고 싶다는 암시를 하는 듯. 지금 일본에서도 일본인이 앞장서 그의 안타까운 죽음의 진실을 알고자 애쓰고 있다고 한다. 역사적, 사실적인 그의 죽음의 진실이 밝혀질 수 있다면 하는 바램이다.
하지만 정신적으로 나는 하늘이 어쩌면 보통 인간에게 불가능할지 모르는 영역인, 깨끗한 채 남아있던 윤동주의 아름다운 영혼에 때를 묻히고 싶지 않아서, 스물일곱의 꽃다운 나이의 그를 일찍 데려간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분명히 그런 뜻이었으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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